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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원감리교회

2022년 3월 31일 사순절 묵상자료

오목사 2022.03.26 18:06 조회 수 : 8

오 형제여

 

본문말씀: 1:8~14

8.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그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아주 담대하게 명령할 수도 있지만,

9. 우리 사이의 사랑 때문에, 오히려 그대에게 간청을 하려고 합니다. 나 바울은 이렇게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이요, 이제는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로 또한 갇힌 몸입니다.

10. 내가 갇혀 있는 동안에 얻은 아들 오네시모를 두고 그대에게 간청합니다.

11. 그가 전에는 그대에게 쓸모 없는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그대와 나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12. 나는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그는 바로 내 마음입니다.

13. 나는 그를 내 곁에 두고 내가 복음을 위하여 갇혀 있는 동안에 그대를 대신해서 나에게 시중들게 하고 싶었으나,

14. 그대의 승낙이 없이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대가 선한 일을 마지못해서 하지 않고, 자진해서 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2~3번 천천히 깊이 읽으십시오. 지금 나에게 말씀하심을 새기며 읽으십시오.

 

빌레몬은 바울을 후원하는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노예 오네시모가 도망치며 금전적 문제까지 일으켰습니다. 이후 오네시모는 바울이 갇혀 있던 로마에서 그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편지를 써서 오네시모를 다시 받아달라고 부탁합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노예제도를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니 바울이 그의 친구 빌레몬에게 쓴 편지를 읽고 그들은 얼마나 동요했을까요. 노예의 생사여탈권은 오로지 주인에게 달려 있었으니 말이지요. 바울은 빌레몬을 믿었고(21) 빌레몬은 오네시모를 형제로 환대합니다. 더 이상 그 둘은 노예와 주인의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쓰고 100년 후, 페르페투아와 펠리키타스라는 두 젊은 여인이 카르타고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펠리키타스는 노예이고 페르페투아는 그녀의 주인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원형 경기장에 손을 맞잡고 들어가 들짐승들에게 살이 찢겼으며 결국 사형집행인의 칼에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노예는 주인과 손을 맞잡고 걸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태동하고 두 번째 세기에 나온 이 짤막한 이야기는 이웃을 자신의 소유로 보지 말고 예수의 소유로 보라는 바울의 말이 어떠한 변화를 낳았는지 이야기 해줍니다. 물론 교회 전체가 이를 따라잡고 잘 정리하여 거기에 담긴 의미를 온전히 알게 되기까지는 수백년이 걸렸지만 말이지요.(로완 윌리엄스, ‘바울을 읽다중에서)

 

차이가 차별로 바뀌는 순간은 권력으로 서로 나누어지게 될 때입니다. 모든 차별은 힘의 불균형에서 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차이가 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힘을 드러내는 것이 차별입니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등 일상적으로 차별을 겪는 이들은 다양한 곳에서 발견되고 현재도 진행 중입니다. 성경에도 인권을 침해하는 내용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너머에 있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유를 예수께서 자신을 희생하사 생명을 사랑하신 십자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예수를 따른 당시의 교회는 완전히 새로운 공동체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