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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원감리교회

주일설교 2011.09.25 [창조적 변화]

2011.09.25 12:05

웹관리자 조회 수:1757 추천:559

||0||0제목 : 창조적 변화

<성경말씀>
<눅8:26-33>
[26] 그들은 갈릴리 맞은 편에 있는 거라사 지방에 닿았다.
[27] 예수께서 뭍에 내리시니, 그 마을 출신으로서 귀신 들린 사람 하나가 예수를 만났다. 그는 오랫동안 옷을 입지 않은 채, 집에서 살지 않고, 무덤에서 지내고 있었다.
[28] 그가 예수를 보고, 소리를 지르고서, 그 앞에 엎드려서, 큰 소리로 말하였다. "더없이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29] 예수께서 이미 악한 귀신더러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명하셨던 것이다. 귀신이 여러 번 그 사람을 붙잡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쇠사슬과 쇠고랑으로 묶어서 감시하였으나, 그는 그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서 광야로 뛰쳐나가곤 하였다.
[30] 예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대답하였다. "군대입니다." 많은 귀신이 그 사람 속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31] 귀신들은 자기들을 지옥에 보내지 말아달라고 예수께 간청하였다.
[32] 마침 그 곳 산기슭에, 놓아 기르는 큰 돼지 떼가 있었다. 귀신들은 자기들을 그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게 허락해 달라고 예수께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허락하시니,
[33]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그 돼지 떼는 비탈을 내리달아서 호수에 빠져서 죽었다.

󰋎 믿음의 삶은 ‘변한다’는 것을 전제
❶ 예수 그리스도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14:6). 생명이라는 것은 살아있음이요, 변한다는 것을 전제함. 생명이신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꿈도 변하고 의식도 변하고 관점도 변하고, 총체적인 삶의 모습이 변해야 함. 사람이 지닌 가치는 상대적일 수밖에 없음. 상대적이라 함은 변화의 가능성을 전제. 따라서 상대적 관점과 가치를 절대적 가치로 확신하는 행위는 바로 성서에서 가르치는 우상.
❷ 그러면 언제까지, 얼마나 변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의 충만하신 경지에 이르기까지 다다르게 됩니다”(엡4:13). 그 변화의 궁극적인 지점은 죽는 순간까지가 아닐까? 그리스도의 분량(경지)에 이르기까지란, 죽는 날까지 변화와 진전이 이뤄져야 한다는 뜻.
❸ 변화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음. 파괴적 변화-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집을 나간 아들의 모습. 뭔가 변화를 추구했지만 그 결과는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재산을 탕진하는 결과로 나타남. 창조적 변화-그런 오류를 깨닫는 것. 그리고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행위.  이는 분명 이전보다 성숙한 결단이요 창조적인 변화.  
󰋏 창조적 변화를 위하여
❶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함. 본문에 거라사 지방에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시는 예수의 모습 나옴.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에게 하는 말.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28) 나를 떠나 달라는 것.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라는 것. 오늘날, 변화를 거부하고 내 식대로 살기를 고집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같음. 귀신을 쫒아낸다는 것은 그런 태도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❷ 변화를 두려워하는 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예수에게 떠나달라고 간청하는 무리들이 또 나타나고 있음.(37) 당연히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 키우던 돼지을 잃어버린 재산상의 손해를 입은 사람들. 한 생명이 귀신으로부터 해방되어 사람답게 사는 것보다 돼지라는 자산을 잃은 게 더 마음이 쓰이는 사람들.
❸ 생각의 차원을 높여야 함. 변해야 할 것이 있고 변하지 말아야 할 것, 그 중심 경계에는 하느님의 뜻과 나의 뜻이라는 게 있음. 그것을 분별하기 위해 우리는 성찰이 필요하고 생각의 차원을 높여야 함.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습니다.”(고전13:11) 진실과 정직의 세계는 다르듯 내 생각을 진리라고 믿는 것은 오류를 범할 수 있음.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자기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을 욕합니다.”(유1:10)
󰋐 변화는 우리를 향하신 하느님의 뜻
❶ 뭔가 바뀌어야 되고 변화되어야 할 내용을 붙잡고 살게 되면 그것은 우리 삶에 걸림돌이 됨. 하느님 나라의 걸림돌이 됨. 가나안 코앞인 가데스바네아에 도달한 히브리인들을 다시 돌려보내신 하느님.(민14:34) 그래서 40년을 방황하게 한 이유가 뭘까?
❷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 분명 약속한 땅이지만, 사람들의 눈으로 보고 온 보고에 울부짖으며 분노하는 모습. 자격이 없다는 뜻. 변화된 모습을 원하시는 하느님.
❸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마찬가지. 부모친척 본토를 버리고 떠나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듣고 떠난 나이 75세. 장지를 마련하고 고향땅에서 여생을 보낼 시기 아닌가? 그러나 묵묵히 떠났다는 것은 변화를 택했다는 의미 .그 변화를 통해 아브라함은 100세에 약속의 아들을 얻고 믿음의 조상이 됨. 변화에 대한 하느님의 요구, 때와 장소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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