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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원감리교회

주일설교 2012.01.29 [생활 신앙]

2012.01.29 12:01

웹관리자 조회 수:1376 추천:473

||0||0제목 : 생활 신앙

<성경말씀>
<마5:13~16>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짠 맛을 되찾게 하겠느냐? 짠 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데도 쓸 데가 없으므로, 바깥에 내버려서 사람들이 짓밟을 뿐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세운 마을은 숨길 수 없다.
[15] 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다 내려놓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다 놓아둔다. 그래야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히 비친다.
[16]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 생활신앙
❶ 영화 ‘도가니’에 나타난 기독교와 교회의 현실.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지만 영화 속에 비쳐진 기독교와 교회의 모습이 너무 자연스럽다는 데 참담함을 느낌. 의식을 진전시키고 역사를 발전시켜온 교회의 자랑스런 유산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느낌.
❷ 오늘날 필요한 것은 ‘신앙생활’보다도 ‘생활신앙’이 필요한 시대. 생활신앙은 ‘신앙이 실제생활과는 너무 동떨어져 사회생활과 유리된 것을 감안한 나머지, 진정한 신앙은 실제생활과 부합되어야 한다’는 뜻(김재준 목사). 교회 안에서의 태도(신앙생활)가 교회 밖에서의 태도와 다르게 나타남으로 인해 생기는 오류를 바로 세워보려는 데서 비롯된 표현.
❸ 오늘 본문,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라”는 말씀은 ‘생활신앙’의 성서적 기원과 바탕을 가르치는 말씀. 이는 그리스도인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과목이자 주님의 명령.        

󰋏 등불을 켜야 할 곳
❶ 그리스도인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 은둔주의와 세속주의. 은둔주의는 세상을 등지고 사는 사람들, 일종의 도피주의라고도 할 수 있음. 세속주의란 신앙인의 본문을 갖고 세상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원리대로 똑같이 사는 모습. 이 둘은 극복의 대상. 세상을 도피해서도 안 되고..똑같이 되서도 안 됨. 세상에 속해 살지만 하느님 백성으로 살아야 한다는 제 3의 영역이 바로 우리의 영역.
❷ 리차드 니버의 ‘그리스도와 문화’에 나타난 그리스도인과 세상과의 바람직한 관계 유형. “세상문화에 동화되지도, 격리되지도 않으면서, 세상을 변혁시키는 그리스도".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느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롬12:2)
❸ 예수의 기도“내가 아버지께 비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 가는 것이 아니라, 악한 자에게서 그들을 지켜주시는 것입니다.”(요17:15)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요17:18) 주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보내셨다는 사실, 세상은 우리가 떠나서도 동화 되서도 안 될 장소.  

󰋐 사명자
❶ ‘생활신앙’의 궁극적인 모습은 바로 사명자의 모습. 세상에 대한 관심과 참여 그리고 변혁을 이끌어내야 할 ‘책임과 의무’의 태도가 필요. (이혼을 결심한 어느 여인의 이야기) 빛과 소금, 누룩과 같은 존재에 대한 가르침은 그런 사명을 지닌 존재로 규정.
❷ “짠 맛을 잃은 바깥에 내버려 사람들이 짓밟을 뿐이다.”(13) 신앙생활로 자기만족과 자아도취에 빠신 그리스도인의 모습. 이스라엘의 멸망 이유- 존재감을 잃음. 하느님의 선택을 다른 민족에 대한 배타적인 차원에서 해석하면서 ‘선민의식’으로 자리 잡음. 그 사명이 신약교회로 넘어오면서 교회가 그런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함.
❸ 그리스도인은 ‘칭찬’ 아니면 ‘박해’를 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성서는 가르침. “너희보다 먼저 온 예언자들도 이와 같이 박해를 받았다.”(마5:12) 세상과 이웃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지니고 사는 ‘생활신앙인’에게는 칭찬과 박해라는 두 차원의 반응이 있다는 사실. 그리스도인에 대한 칭찬과 박해를 통해 세상은 변혁되어가게 마련. 그게 그리스도인의 존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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