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마르시온은 자신의 신학과 신앙윤리에 근거하여 금욕주의 생활을 하였다. 하지만, '하나님의 의도 신학'을 말하고 배운 베뢰아 사람들의 신앙 윤리는 어떠한가? 김기동의 우주론과 신들의 하늘에 대한 이론과 주장은 오늘날 다음과 같은 신앙 윤리를 형성하는 준거(準據)가 되고 있다. 성도들에게 '신들의 하늘'이란 새로운 유토피아를 제시함으로써, 그곳을 장차 성도들이 가야 할 곳, 이 땅에서 미리 물질과 봉사를 보낼 수 있는 곳으로 여기게 만든 것이다. 당연히 성도들은 하늘나라에 상급을 쌓아야 한다는 명분 아래 물질의 헌신을 무섭게 강요 받는다. 이 헌신으로 가정이 복을 받고 사업이 복 받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실업인들도 헌신만을 우선적으로 하다 보니, 사업을 할 때도 기업경영기법보다는 헌금을 내고 물질적인 복을 받으려는 데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기업윤리인 의(義)와 인(仁)과 신(信)이 배제된 헌금을 하다보니 기업은 어려움이 있고, 부도가 나고 도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뿐 아니라, 성도들의 가정이 파괴되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한다. 과도한 헌금을 강요받다 보니 집집마다 빚에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성도의 가정은 가난해지는데 오히려 교회는 부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김기동과 그의 주장을 따르는 성도들과 교회는 '신들의 하늘'에는 관심이 없고, 이 땅에 정착하려는 아이러니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또한, 인간의 윤리적인 타락과 세속적인 범죄에 대해서도 인격적인 책임을 무시한 주장을 한다. 김기동의 구원론에 의하면, 예수께서 죄를 짊어지고 가셨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죄 짓게 되는 것은 예수도 우리도 아닌 제3자인 귀신의 역사라는 것이다. 성도의 인격적 탈선의 책임을 귀신에게 전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는, 구원을 율법의 정죄에서 자유한 것으로만 가르침으로써 성도들이 하나님의 양심인 계명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유도하고 있다. 오른편 강도가 양심을 초월하여 낙원에 이른 것을 비유로 양심의 자유를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김기동 신학은, 윤리가 없는 복음주의가 되었고 성화(聖化)는 없이 오직 칭의(稱義)만 있는 신학이 되었다. 즉, 초대교회가 경계하였던 율법의 폐지와 도덕률을 무시한 방종의 신앙을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베뢰아 사람들은 윤리적 설교를 듣기 싫어하며, 이를 생명이 없는 설교로 여겨 검부락지 설교라고 말하며 무시해 버린다. 성경은,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은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7)고 함으로써 신앙과 윤리의 관계를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즉, 부부간의 다툼으로 기도가 막히게 되니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함을 강조하는 말씀이다.
그러나, 베뢰아 사람들은 부부싸움을 해도 그 책임을 귀신에게 전가시키고 회개와 화해 없이도 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다. 성경은 회개 없이는 기도가 중단된다고 했는데 더욱 열심히 기도할 수 있는 것은 무슨 영의 역사인가? 이는 분명히 성령의 역사는 아닌 것이다. 베뢰아 사람들은 과도한 헌금 강요로 거짓말을 강요받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헌금할 때 남편의 반대를 피하기 위해 남편과 상의 없이 남편을 속이고 헌금을 하도록 강요한다. 헌금을 강요하는 교역자들도 이러한 거짓말은 모두 복을 받기 위한 것이라고 가르쳐 성도들로 하여금 거짓말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지 않도록 만들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거짓이 있는 곳에 진리의 영이 계실 수 있겠는가?
소위 베뢰아 사람을 만나보면 그들에게서 전투적인 자세와 어투를 쉽게 느낄 것이다. "하나님의 의도" 신학을 기초로 하여 형성된 그들의 신앙 윤리에서 기독교인의 동질성(Christian Identity)을 찾아 보기 힘들다. 예수는 마귀를 '거짓의 아비'라고 했다(요 8:44). 누구든지 김기동 신학을 제대로 살펴 본다면, 그 신학이 '거짓의 아들'이며 허구적인 가설에 기인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를 볼 때, 어떻게 김기동이 주장하는 "하나님의 의도"가 거룩한 진리가 될 수 있는가!
갈라디아서 1:6-10은 '다른(ετερον) 복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 '다른 복음'이란 성도를 교란하여 복음을 변하게 하는 것이며, 필경 저주가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다른 복음'은 기존의 것과 다른 뜻을 가진 새로운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바로 '틀린 복음'으로, 예수가 전한 복음이 아니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복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김기동의 신학은 정통 신학과는 '다른(αλλον) 것'이 아니라 '틀린(ετερον) 것'이다. 그리고, 성도들로 하여금 기독교 전통 신앙의 노선을 일탈(逸脫)하게 만드는 잘못된 학설이다.
前 성락교회 부목사 이대규 목사의 베뢰아 비판 中
http://cafe.daum.net/churchre
그래서, 실업인들도 헌신만을 우선적으로 하다 보니, 사업을 할 때도 기업경영기법보다는 헌금을 내고 물질적인 복을 받으려는 데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기업윤리인 의(義)와 인(仁)과 신(信)이 배제된 헌금을 하다보니 기업은 어려움이 있고, 부도가 나고 도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뿐 아니라, 성도들의 가정이 파괴되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한다. 과도한 헌금을 강요받다 보니 집집마다 빚에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성도의 가정은 가난해지는데 오히려 교회는 부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김기동과 그의 주장을 따르는 성도들과 교회는 '신들의 하늘'에는 관심이 없고, 이 땅에 정착하려는 아이러니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또한, 인간의 윤리적인 타락과 세속적인 범죄에 대해서도 인격적인 책임을 무시한 주장을 한다. 김기동의 구원론에 의하면, 예수께서 죄를 짊어지고 가셨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죄 짓게 되는 것은 예수도 우리도 아닌 제3자인 귀신의 역사라는 것이다. 성도의 인격적 탈선의 책임을 귀신에게 전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는, 구원을 율법의 정죄에서 자유한 것으로만 가르침으로써 성도들이 하나님의 양심인 계명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유도하고 있다. 오른편 강도가 양심을 초월하여 낙원에 이른 것을 비유로 양심의 자유를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김기동 신학은, 윤리가 없는 복음주의가 되었고 성화(聖化)는 없이 오직 칭의(稱義)만 있는 신학이 되었다. 즉, 초대교회가 경계하였던 율법의 폐지와 도덕률을 무시한 방종의 신앙을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베뢰아 사람들은 윤리적 설교를 듣기 싫어하며, 이를 생명이 없는 설교로 여겨 검부락지 설교라고 말하며 무시해 버린다. 성경은,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은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7)고 함으로써 신앙과 윤리의 관계를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즉, 부부간의 다툼으로 기도가 막히게 되니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함을 강조하는 말씀이다.
그러나, 베뢰아 사람들은 부부싸움을 해도 그 책임을 귀신에게 전가시키고 회개와 화해 없이도 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다. 성경은 회개 없이는 기도가 중단된다고 했는데 더욱 열심히 기도할 수 있는 것은 무슨 영의 역사인가? 이는 분명히 성령의 역사는 아닌 것이다. 베뢰아 사람들은 과도한 헌금 강요로 거짓말을 강요받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헌금할 때 남편의 반대를 피하기 위해 남편과 상의 없이 남편을 속이고 헌금을 하도록 강요한다. 헌금을 강요하는 교역자들도 이러한 거짓말은 모두 복을 받기 위한 것이라고 가르쳐 성도들로 하여금 거짓말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지 않도록 만들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거짓이 있는 곳에 진리의 영이 계실 수 있겠는가?
소위 베뢰아 사람을 만나보면 그들에게서 전투적인 자세와 어투를 쉽게 느낄 것이다. "하나님의 의도" 신학을 기초로 하여 형성된 그들의 신앙 윤리에서 기독교인의 동질성(Christian Identity)을 찾아 보기 힘들다. 예수는 마귀를 '거짓의 아비'라고 했다(요 8:44). 누구든지 김기동 신학을 제대로 살펴 본다면, 그 신학이 '거짓의 아들'이며 허구적인 가설에 기인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를 볼 때, 어떻게 김기동이 주장하는 "하나님의 의도"가 거룩한 진리가 될 수 있는가!
갈라디아서 1:6-10은 '다른(ετερον) 복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 '다른 복음'이란 성도를 교란하여 복음을 변하게 하는 것이며, 필경 저주가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다른 복음'은 기존의 것과 다른 뜻을 가진 새로운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바로 '틀린 복음'으로, 예수가 전한 복음이 아니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복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김기동의 신학은 정통 신학과는 '다른(αλλον) 것'이 아니라 '틀린(ετερον) 것'이다. 그리고, 성도들로 하여금 기독교 전통 신앙의 노선을 일탈(逸脫)하게 만드는 잘못된 학설이다.
前 성락교회 부목사 이대규 목사의 베뢰아 비판 中
http://cafe.daum.net/church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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