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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원감리교회

150725 두루마리를 태우는 시드기야

2015.07.27 19:30

이주현목사 조회 수:46

150725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예레미야36:1-32

. 내 용: 바룩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말씀을 읽어주다

1. 시드기야 왕궁 근위대에 감금당한 예레미야의 예언을 바룩이 기록하여 백성들에게 읽어줌

2. 시드기야가 그 두루마리를 불에 태워 버리자 다시 기록하게 하시는 하느님

 

. 묵상 말씀: “혹시, 저마다 자신의 악한 길에서 돌아선다면, 나도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여 주겠다”(렘36:3).

1. 하느님의 인격

시드기야의 눈 밖에 난 예레미야는 근위대에 잡혀 감금을 당하게 됩니다. 예언자로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지닌 예레미야를 함부로 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맘대로 예언을 하게 하자니 사사건건 부딪히는 시드기야 왕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대임에 틀림이 없었을 터입니다. 이에 하느님은 두루마리를 구하여 주님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였고 예레미야는 바룩에게 그 말씀을 두루마리에 기록하게 하고 성전에 모인 백성들에게 읽어주도록 했습니다. 이미 멸망당할 것이라는 예언이 선포된 상태에서 말씀을 전하라고 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혹시 저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선다면 허물과 죄를 용서해주고 싶어서’(3)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혹시’라는 표현이 마음에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한 사람이라도 구원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절박한 심정 속에 담긴 깊은 사랑 말입니다. 더불어 하느님의 주권과 강권이라는 효과적인 수단 대신 스스로의 판단에 끝까지 맡기는 하느님의 인격이랄까요? 그런 것 말입니다.

2. 두루마리를 태우는 시드기야

그렇게 한 사람이라도 구하시려는 절박감으로 다가서는 하느님의 심정과는 달리 강퍅해질 대로 강퍅해진 시드기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밖에 진을 치고 있는 급박한 시기에 하느님께 회개하고 바빌론에 항복하라는 메시지가 주는 의미를 너무나 잘 알고 있을 터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두루마리를 태우는 일은 도에 지나친 일이었습니다. 고뇌하는 왕의 모습이 아니라 감정적이고 극단적인 행동으로 일을 그르치고 파멸을 앞당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더란 말입니다. 일이 위급해지면 다급해지고 다급하면 판단이 흐려지게 마련입니다. 그럴수록 지도자는 지도력이 빛나게 마련이지요. 위급할 때 빛나는 지도자의 지도력은 무엇일까요? 위대한 지도자 아브라함과 모세, 여호수아, 그리고 다윗을 통해 그런 지도력은 충분하게 학습되었을 터입니다. 바로 엎드려 기도하는 것이지요. 자신의 능력과 경험, 판단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능력과 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그런 지도력 대신 두루마리를 불에 태웠습니다. 엉덩이에 뿔 난 못난 사람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