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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원감리교회

141121 하느님의 진노

2014.11.21 06:26

이주현 조회 수:122

141121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이사야9:8-21

. 내 용: 하느님의 진노

1. 하느님의 심판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찾지도 않는 북 이스라엘의 교만과 오만함.

2. 그로 인하여 북 이스라엘에 대하여 풀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진노와 내리신 재앙들.

 

. 묵상 말씀: “그들을 치신 분에게로 돌아오지 않았고, 만군의 주님을 찾지도 않았다”(9:13).

1. 하느님의 숨겨진 속성과 성품

하느님의 진노 속에는 당신의 백성에 대한 진한 사랑이 스며있습니다. 당신이 선택하고 무한한 은총을 베풀어주신 백성들에 대한 기대가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진노를 통해 하느님의 살아계심과 자신들에 대한 기대와 사랑을 체험한 셈입니다. 태생적인 인간의 한계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하느님의 은총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언급된 하느님의 진노는 좀 양상이 다릅니다. “진노를 풀지 않으시고, 심판을 계속하시려고 여전히 손을 들고 계신다”(12,17,21)고 했습니다. 그것도 한 번으로 끝나질 않습니다. 세 번이나 반복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결국 이러한 진노로 인하여 북 이스라엘은 B.C 722년에 앗시리아로부터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진노하시는 하느님’, 그 진노를 풀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우리는 많이 놓치고 사는 것 같습니다. 참고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감춰져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하느님도 때로는 참지 못하시는 속성과 성품이 숨겨져 있음을 오늘 본문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2. 지옥

하느님의 심판은 그 심판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그 심판은 일종의 사인(sign)이지요. 심판에는 그 의도가 분명히 담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심판은 그 심판이 하느님의 심판임을 깨닫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북 이스라엘은 그런 깨달음과 성찰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심판으로 인해 재난을 당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벽돌집이 무너지면 다듬은 돌로 다시 쌓고, 뽕나무가 찍히면 백향목을 대신 심겠다’(10)고 했습니다. ‘고아와 과부까지도 불쌍히 여기지 않으시고’(17), ‘므낫세가 에브라임을 먹고 에브라임은 므낫세를 먹으면서도 다 함께 유다에 대항하는교만과 오만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임하는 하느님의 진노는 이스라엘이 지옥으로 변하는 모습입니다. ‘악한 일과 어리석은 말’(17)만 횡행합니다. ‘아무도 서로 아끼지 않습니다’(19). ‘아무리 먹어도 배가 고파 제 살점을 뜯어먹습니다’(20). 그런 곳이 바로 지옥이지요. 성찰과 반성이 생략된 곳에 인간의 교만과 오만이 자리하게 마련입니다. 그곳이 바로 지옥이 되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