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922 중용지도(中庸之道)
2014.09.22 07:08
||0||0140922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전도서7:13-18
. 내 용: 중용지도(中庸之道)
1.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생각해 보아라.
2. 좋은 때는 기뻐하고 어려운 때에는 생각하여라.
3.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극단을 피한다.
. 묵상 말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극단을 피한다”(전7:18).
1. 하느님이 하시는 일
이 세상에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 아닌 게 무엇이 있을까요? ‘궁극적인 실재’이신 하느님이 사실 상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의 주관자인 셈이죠. 그 하느님이 하시는 일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 때는 ‘좋다’고 하고 어떤 때는 ‘나쁘다’고 반응할 뿐입니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하느님은 좋은 때도 있게 하시고, 나쁜 때도 있게 하신다”(14)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랑이신 하느님이 하신 일이 과연 나쁜 일이 있을까요? 그럴 이 없습니다. ‘나쁘다, 좋다’는 평가는 단지 우리의 주관적인 평가일 뿐입니다.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엄격히 말해 ‘좋다, 나쁘다’라는 가치를 뛰어 넘는 ‘절대선’입니다. 그 하느님의 일을 대하는 인간들이 그 가치를 부여할 뿐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하시는 일’을 갖고 손쉽게 ‘좋다, 나쁘다’라고 가치를 부여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또 이렇게 가르칩니다. “좋은 때에는 기뻐하고, 어려운 때에는 생각하여라”(14)고 말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하느님의 하시는 일은 나쁜 게 없다는 뜻이지요. 그러니 생각할 일입니다.
2. 중용
중용(中庸)이란,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으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음’을 뜻하는 유교의 가르침입니다. ‘지나침’이란 말 속에는 일을 성취하려는 집착과 인위적인 모습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지나침 속에는 반드시 오류가 생기게 마련이지요. 기본적으로 인간은 허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나약함을 성찰하고 겸손해져야 일을 그르치지 않는다는 조상들의 가르침인 셈입니다. 그 지나침이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런 중용의 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무 의롭게 살지도 말고, 너무 슬기롭게 살지도 말아라’(16). ‘너무 악하게 살지도 말고, 너무 어리석게 살지도 말아라’(17)고 말입니다. 중용지도에서 인간의 오류를 지적하는 그 ‘지나침’이 본문에서는 ‘너무’라는 부사어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의롭게 살던, 악하게 살던, 거기 ‘지나침’이 개입되면 오류를 범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일들에 대하여 함부로 규정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성찰하고 온전하신 하느님의 지혜를 구하면서 살아가는 삶, 그게 그리스도인이 취해야 할 중요지도가 아닐까요? 그래서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극단을 피하게 마련’(18)입니다.
. 읽은 말씀: 전도서7:13-18
. 내 용: 중용지도(中庸之道)
1.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생각해 보아라.
2. 좋은 때는 기뻐하고 어려운 때에는 생각하여라.
3.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극단을 피한다.
. 묵상 말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극단을 피한다”(전7:18).
1. 하느님이 하시는 일
이 세상에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 아닌 게 무엇이 있을까요? ‘궁극적인 실재’이신 하느님이 사실 상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의 주관자인 셈이죠. 그 하느님이 하시는 일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 때는 ‘좋다’고 하고 어떤 때는 ‘나쁘다’고 반응할 뿐입니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하느님은 좋은 때도 있게 하시고, 나쁜 때도 있게 하신다”(14)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랑이신 하느님이 하신 일이 과연 나쁜 일이 있을까요? 그럴 이 없습니다. ‘나쁘다, 좋다’는 평가는 단지 우리의 주관적인 평가일 뿐입니다.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엄격히 말해 ‘좋다, 나쁘다’라는 가치를 뛰어 넘는 ‘절대선’입니다. 그 하느님의 일을 대하는 인간들이 그 가치를 부여할 뿐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하시는 일’을 갖고 손쉽게 ‘좋다, 나쁘다’라고 가치를 부여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또 이렇게 가르칩니다. “좋은 때에는 기뻐하고, 어려운 때에는 생각하여라”(14)고 말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하느님의 하시는 일은 나쁜 게 없다는 뜻이지요. 그러니 생각할 일입니다.
2. 중용
중용(中庸)이란,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으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음’을 뜻하는 유교의 가르침입니다. ‘지나침’이란 말 속에는 일을 성취하려는 집착과 인위적인 모습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지나침 속에는 반드시 오류가 생기게 마련이지요. 기본적으로 인간은 허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나약함을 성찰하고 겸손해져야 일을 그르치지 않는다는 조상들의 가르침인 셈입니다. 그 지나침이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런 중용의 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무 의롭게 살지도 말고, 너무 슬기롭게 살지도 말아라’(16). ‘너무 악하게 살지도 말고, 너무 어리석게 살지도 말아라’(17)고 말입니다. 중용지도에서 인간의 오류를 지적하는 그 ‘지나침’이 본문에서는 ‘너무’라는 부사어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의롭게 살던, 악하게 살던, 거기 ‘지나침’이 개입되면 오류를 범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일들에 대하여 함부로 규정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성찰하고 온전하신 하느님의 지혜를 구하면서 살아가는 삶, 그게 그리스도인이 취해야 할 중요지도가 아닐까요? 그래서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극단을 피하게 마련’(18)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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