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823 수고도 헛되다
2014.08.23 06:30
||0||0140823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전도서2:18-26
. 내 용: 수고도 헛되다
1. 수고하여 이뤄놓은 것들을 물려받을 사람들에 대한 무지로 인한 허무.
2. 자기가 하는 수고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은 하느님이 주시는 것이다.
. 묵상 말씀: “사람에게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 자기가 하는 수고에서 스스로 보람을 느끼는 것,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전2:24).
1. 수고에 대한 미련
오늘 본문은 좀 의아한 구석이 있습니다.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판단과 그 판단에 의한 솔직한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수고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의해 이뤄진 일들입니다. 그런데 그 수고에 대한 평가가 모두 헛되다는 것으로 모아지고, 또한 헛되다고 판단한 기준들이 지나치게 단편적이기 때문입니다. 전도자는 자신의 수고에 대하여 헛되다고 판단한 근거를 두 가지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이 이뤄놓은 수고와 그 결실을 자신의 뒤에 올 사람에게 물려줄 일’(18)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는 ‘수고하는 사람 따로 있고 혜택을 보는 사람이 따로 있다’(21)는 것 때문입니다. 결국 수고한 사람 따로 있고, 그 수고를 누리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판단에서 오는 정서적 박탈감을 고백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 표현이 너무 솔직해서 ‘이래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암튼 자신의 수고에 대한 ‘미련’은 자신의 수고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흐리게 한다는 사실을 오늘 본문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2. 스스로 보람을 느껴라
이러한 정서적 박탈감이 지속될 경우, 허무주의자로 빠지고,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회의주의자로 평생을 무기력하게 살고 말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전도자가 지향하는 삶의 모습은 분명히 아닙니다. 그래서인가요, 24절 이하에서는 수고에 대한 회의적인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기가 하는 수고에서 스스로 보람을 느껴야 한다’(24)는 것과 ‘수고와 기쁨, 그것을 누리는 사람에 대한 판단’을 하느님께 돌리고 있습니다. “그 분께서 주시지 않고서야, 누가 먹을 수 있으며 누가 즐길 수 있겠는가?”(25)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이 한 수고는 수고한 대로 끝내야 합니다. 그 결과에 대한 미련은 수고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가져오게 마련입니다. 수고를 할 수 있는 역량이 주어졌고,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에 만족할 때, 우리는 그 수고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전도자는 그 보람을 하느님이 주시는 것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수고하는 일에 대하여 감사하고 그 결과에 대하여 미련을 버리는 것, 그게 수고의 허무함을 극복하는 길이지요. 전도자가 말하고 싶었던 게 그 것 아닐까요?
. 읽은 말씀: 전도서2:18-26
. 내 용: 수고도 헛되다
1. 수고하여 이뤄놓은 것들을 물려받을 사람들에 대한 무지로 인한 허무.
2. 자기가 하는 수고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은 하느님이 주시는 것이다.
. 묵상 말씀: “사람에게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 자기가 하는 수고에서 스스로 보람을 느끼는 것,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전2:24).
1. 수고에 대한 미련
오늘 본문은 좀 의아한 구석이 있습니다.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판단과 그 판단에 의한 솔직한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수고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의해 이뤄진 일들입니다. 그런데 그 수고에 대한 평가가 모두 헛되다는 것으로 모아지고, 또한 헛되다고 판단한 기준들이 지나치게 단편적이기 때문입니다. 전도자는 자신의 수고에 대하여 헛되다고 판단한 근거를 두 가지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이 이뤄놓은 수고와 그 결실을 자신의 뒤에 올 사람에게 물려줄 일’(18)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는 ‘수고하는 사람 따로 있고 혜택을 보는 사람이 따로 있다’(21)는 것 때문입니다. 결국 수고한 사람 따로 있고, 그 수고를 누리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판단에서 오는 정서적 박탈감을 고백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 표현이 너무 솔직해서 ‘이래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암튼 자신의 수고에 대한 ‘미련’은 자신의 수고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흐리게 한다는 사실을 오늘 본문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2. 스스로 보람을 느껴라
이러한 정서적 박탈감이 지속될 경우, 허무주의자로 빠지고,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회의주의자로 평생을 무기력하게 살고 말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전도자가 지향하는 삶의 모습은 분명히 아닙니다. 그래서인가요, 24절 이하에서는 수고에 대한 회의적인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기가 하는 수고에서 스스로 보람을 느껴야 한다’(24)는 것과 ‘수고와 기쁨, 그것을 누리는 사람에 대한 판단’을 하느님께 돌리고 있습니다. “그 분께서 주시지 않고서야, 누가 먹을 수 있으며 누가 즐길 수 있겠는가?”(25)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이 한 수고는 수고한 대로 끝내야 합니다. 그 결과에 대한 미련은 수고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가져오게 마련입니다. 수고를 할 수 있는 역량이 주어졌고,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에 만족할 때, 우리는 그 수고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전도자는 그 보람을 하느님이 주시는 것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수고하는 일에 대하여 감사하고 그 결과에 대하여 미련을 버리는 것, 그게 수고의 허무함을 극복하는 길이지요. 전도자가 말하고 싶었던 게 그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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