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301 순례자의 노래
2014.03.01 05:39
||0||0140301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시편122:1-9
. 내 용: 예루살렘 성전을 사랑하는 사람
1. 예루살렘 성전 순례객들이 부르도록 지은 다윗의 시.
2.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은 장차 이르게 될 새 예루살렘에 대한 상징.
. 묵상 말씀: “예루살렘아,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평화가 있기를”(시122:6).
1. 예루살렘 성전 순례객을 위한 노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성전은 눈에 보이는 건물 이상의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마음의 고향이었고, 하느님 임재의 장소로 그들의 삶에 있어 안식처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있어 일 년에 몇 차례(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행해지는 성전 순례는 그들에게 있어 하나의 감동이었습니다. 그래서인가요?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성전에 올라가자는 말에 이미 기쁨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말만 들었는데, 그의 발은 이미 ‘성문 안에 들어서’(2) 있습니다. 성전에 대한 시인의 특별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단순히 사랑만 가지고 그런 감정이 생길 수 있을까요? 이는 하느님의 임재를 몸소 경험한 사람들, 하느님의 보호와 인도를 체험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현상들입니다. 양피지 냄새 나는 하느님이 아니라 꿈틀대고 찌르고 누르면 검붉은 피가 솟구치는 그런 살아계신 하느님, 그 하느님을 경험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일 터입니다. 그렇습니다. 성전 순례객들에게 있어 하느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이셨습니다. 삶의 의미였고 기쁨이었습니다.
2. 새 예루살렘
그런 하느님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억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는 유독 “평화”에 대한 표현이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평화”가 깃들고 있기를 기원하는 말씀이 세 구절 가운데 5번이나 반복되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한 상황과 그들의 희망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평화였고 그 평화는 하느님이 내리시고 허락하셔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루를 살더라도 맘 편히 살기를 바라는 모습입니다. 남북으로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하루도 맘 편할 날이 없었던 약소국의 서러움이 느껴집니다. 그 가운데 그들이 진정한 평화를 느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느님의 자비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의 평화를 기원하는 샬롬!(평화)으로 굳어졌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땅에는 언제가 평화가 찾아올까요? 60년 동안 헤어진 제 식구 딱 한 번 만나는 것도 그리도 힘이 드는 세상이니 말입니다. 결국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평화는 새 예루살렘입니다. 그분이 오셔서 마지막 심판이 이루어지는 날, 당신의 사랑하는 성도들을 위해 예비하신 새 예루살렘 말입니다.
. 읽은 말씀: 시편122:1-9
. 내 용: 예루살렘 성전을 사랑하는 사람
1. 예루살렘 성전 순례객들이 부르도록 지은 다윗의 시.
2.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은 장차 이르게 될 새 예루살렘에 대한 상징.
. 묵상 말씀: “예루살렘아,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평화가 있기를”(시122:6).
1. 예루살렘 성전 순례객을 위한 노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성전은 눈에 보이는 건물 이상의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마음의 고향이었고, 하느님 임재의 장소로 그들의 삶에 있어 안식처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있어 일 년에 몇 차례(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행해지는 성전 순례는 그들에게 있어 하나의 감동이었습니다. 그래서인가요?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성전에 올라가자는 말에 이미 기쁨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말만 들었는데, 그의 발은 이미 ‘성문 안에 들어서’(2) 있습니다. 성전에 대한 시인의 특별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단순히 사랑만 가지고 그런 감정이 생길 수 있을까요? 이는 하느님의 임재를 몸소 경험한 사람들, 하느님의 보호와 인도를 체험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현상들입니다. 양피지 냄새 나는 하느님이 아니라 꿈틀대고 찌르고 누르면 검붉은 피가 솟구치는 그런 살아계신 하느님, 그 하느님을 경험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일 터입니다. 그렇습니다. 성전 순례객들에게 있어 하느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이셨습니다. 삶의 의미였고 기쁨이었습니다.
2. 새 예루살렘
그런 하느님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억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는 유독 “평화”에 대한 표현이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평화”가 깃들고 있기를 기원하는 말씀이 세 구절 가운데 5번이나 반복되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한 상황과 그들의 희망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평화였고 그 평화는 하느님이 내리시고 허락하셔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루를 살더라도 맘 편히 살기를 바라는 모습입니다. 남북으로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하루도 맘 편할 날이 없었던 약소국의 서러움이 느껴집니다. 그 가운데 그들이 진정한 평화를 느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느님의 자비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의 평화를 기원하는 샬롬!(평화)으로 굳어졌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땅에는 언제가 평화가 찾아올까요? 60년 동안 헤어진 제 식구 딱 한 번 만나는 것도 그리도 힘이 드는 세상이니 말입니다. 결국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평화는 새 예루살렘입니다. 그분이 오셔서 마지막 심판이 이루어지는 날, 당신의 사랑하는 성도들을 위해 예비하신 새 예루살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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