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226 주님의 법과 기도
2014.02.26 06:25
||0||0140226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시편119:169-176
. 내 용: 기도와 말씀
1. 시인의 부르짖음과 애원을 통해 깨우치고 건져달라는 간구.
2. 시인의 간구를 통해 보여주는 하느님의 모습.
. 묵상 말씀: “주님의 약속하신 말씀대로 나를 건져 주십시오”(시119:170).
1. 부르짖음과 애원, 그리고 말씀
새의 양 날개는 새가 공중을 나르는데 필수요소입니다. 한쪽 날개로는 나를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이를 빗대어 건강한 사회를 일컫는 비유적인 이야기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좌우,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지평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사회가 미래를 지향하는 건강한 사회라는 이야기이지요. 신앙의 영역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쪽만 치우치면 가치와 이념, 교훈과 가르침이 왜곡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건강한 신앙의 영역이란 어떤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 그런 건강한 신앙의 영역이 시인의 간구를 통해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로 기도와 말씀입니다. 기도와 말씀이라는 두 기둥이 믿음이라는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셈이지요. 기도와 말씀이라는 두 날개를 통해 신앙의 세계로 날아오를 수가 있는 이치입니다. 본문에 “부르짖음이 주님 앞에 이르게 해주시고”(169)라고 했고 “나의 애원이 주님께 이르게 해주시고”(170)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깨우치고, 건져달라’(169,170)라고 했습니다. 부르짖음과 애원이라는 기도와 주님의 말씀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모습입니다.
2. 주님의 능력
주님의 능력은 사람에 따라 처지와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어떤 이에게는 치유의 하느님으로 또 어떤 이에게는 선한 목자로 나타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오늘 시인에게 나타나시는 모습은 먼저, ‘가르치시는 하느님’(171) 이십니다. 주님의 책을 여는 순간 주님의 빛이 비치고서 주의 법을 깨닫는 이치와 같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삶의 이치와 원리를 가르치시는 분이십니다. 그 다음에 “나를 돕는 분”(173)이십니다. 주님의 법도를 택하는 사람에게 주님은 돕는 분으로 나타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섬김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돕는 위치를 한 번도 벗어나 본적이 없는 그런 분이십니다. 그 다음에는 ‘나를 살려주시는 분’(175)이십니다. 돕는 분과 살려주시는 분은 서로 유사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굳이 그 차이를 찾는다면 그게 무엇일까요? 그것은 삶의 본질적인 차원의 차이인 듯싶습니다. 돕는 것은 그야말로 일상에서 능력이 닫는 대로 도와주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살려주는 것은 생명과 관련된 삶의 포괄적인 영역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더 절박하고 더욱 간절하겠지요. 하느님을 믿음에 있어, 이렇게 구체적인 모습을 제대로 믿어야 할 것입니다. 거기서 새로운 활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 읽은 말씀: 시편119:169-176
. 내 용: 기도와 말씀
1. 시인의 부르짖음과 애원을 통해 깨우치고 건져달라는 간구.
2. 시인의 간구를 통해 보여주는 하느님의 모습.
. 묵상 말씀: “주님의 약속하신 말씀대로 나를 건져 주십시오”(시119:170).
1. 부르짖음과 애원, 그리고 말씀
새의 양 날개는 새가 공중을 나르는데 필수요소입니다. 한쪽 날개로는 나를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이를 빗대어 건강한 사회를 일컫는 비유적인 이야기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좌우,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지평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사회가 미래를 지향하는 건강한 사회라는 이야기이지요. 신앙의 영역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쪽만 치우치면 가치와 이념, 교훈과 가르침이 왜곡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건강한 신앙의 영역이란 어떤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 그런 건강한 신앙의 영역이 시인의 간구를 통해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로 기도와 말씀입니다. 기도와 말씀이라는 두 기둥이 믿음이라는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셈이지요. 기도와 말씀이라는 두 날개를 통해 신앙의 세계로 날아오를 수가 있는 이치입니다. 본문에 “부르짖음이 주님 앞에 이르게 해주시고”(169)라고 했고 “나의 애원이 주님께 이르게 해주시고”(170)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깨우치고, 건져달라’(169,170)라고 했습니다. 부르짖음과 애원이라는 기도와 주님의 말씀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모습입니다.
2. 주님의 능력
주님의 능력은 사람에 따라 처지와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어떤 이에게는 치유의 하느님으로 또 어떤 이에게는 선한 목자로 나타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오늘 시인에게 나타나시는 모습은 먼저, ‘가르치시는 하느님’(171) 이십니다. 주님의 책을 여는 순간 주님의 빛이 비치고서 주의 법을 깨닫는 이치와 같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삶의 이치와 원리를 가르치시는 분이십니다. 그 다음에 “나를 돕는 분”(173)이십니다. 주님의 법도를 택하는 사람에게 주님은 돕는 분으로 나타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섬김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돕는 위치를 한 번도 벗어나 본적이 없는 그런 분이십니다. 그 다음에는 ‘나를 살려주시는 분’(175)이십니다. 돕는 분과 살려주시는 분은 서로 유사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굳이 그 차이를 찾는다면 그게 무엇일까요? 그것은 삶의 본질적인 차원의 차이인 듯싶습니다. 돕는 것은 그야말로 일상에서 능력이 닫는 대로 도와주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살려주는 것은 생명과 관련된 삶의 포괄적인 영역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더 절박하고 더욱 간절하겠지요. 하느님을 믿음에 있어, 이렇게 구체적인 모습을 제대로 믿어야 할 것입니다. 거기서 새로운 활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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