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219 주님의 법을 짓밟는 사람들
2014.02.19 20:04
||0||0140219 새벽 묵상 읽은 말씀: 시편119:116~128
. 내 용: 주님의 법을 짓밟는 자들
1. 주님의 법을 따르고 소망을 지키기 위해 주님께 붙들어 달라는 시인의 간구.
2. 주님의 법을 짓밟는 사람들의 모습-주님의 율례를 떠나고 남을 억압하고 오만한 자들.
. 묵상 말씀: “나는 붙들어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구원을 얻고, 주님의 율례들을 항상 살피겠습니다”(시119:117).
1. 자비와 긍휼
주님의 법을 지키는 것, 그것은 자신의 의지와 결단만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 법에 대한 사랑과 깨달음 그리고 열망이 어우러져 그 법을 지켜 행하게 되지만, 어디까지나 그 본질은 주님의 자비와 긍휼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되는 일이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시인은 본문을 통해 “나를 붙들어 살려주시고”(116)라고 했고 “나를 붙들어 주십시오”(117)라며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 법이 소중하고 따라야 할 법임을 깨닫긴 하지만 그게 자신의 의지대로 되질 않는다는 솔직한 고백일 터입니다. 나를 ‘붙들어 달라’는 부탁은 자신의 의지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는 수동적인 태도이면서 동시에 주님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려는 능동적인 태도라는 이중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되니까, 주님의 주권에 자신의 의지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서에서 가르치는 믿음의 본질이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이루신 구원사역의 본질도 바로 그런 주님의 은총입니다.
2. 주님의 법을 짓밟는 사람들
주님의 법을 소중히 여기고 따른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 법을 짓밟는 사람들이 있음을 본문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먼저, “주님의 율례에서 떠나는 자”(118)입니다. 왜, 주님의 율례에서 떠나는 것일까요? 둘 중 하나입니다. 게으르거나 무지함 때문입니다. 게으르거나 무지함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허물을 볼 줄 모른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주님께 ‘붙들어 달라’는 기도 대신 주님의 율례를 떠나고 마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는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자를 “억압하는 자들”(121)입니다. 자신들의 삶 속에서 보여주지 못하는 공의와 정의이기에 훼방을 놓는 것입니다. 그게 억압으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그리고 “오만한 자들”(122)입니다. 남들을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로 보는 자세입니다. 자신의 허물대신 남의 허무만 볼 줄 아는 짝눈을 소유한 사람들이지요. 그런 사람들이 “주님의 법을 짓밟아 버렸”(126)다고 시인은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들이 사용하는 수단은 속임수와 억압, 모든 거짓 행위들입니다. 율례를 따르지 않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훼방을 놓는 모습입니다.
. 내 용: 주님의 법을 짓밟는 자들
1. 주님의 법을 따르고 소망을 지키기 위해 주님께 붙들어 달라는 시인의 간구.
2. 주님의 법을 짓밟는 사람들의 모습-주님의 율례를 떠나고 남을 억압하고 오만한 자들.
. 묵상 말씀: “나는 붙들어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구원을 얻고, 주님의 율례들을 항상 살피겠습니다”(시119:117).
1. 자비와 긍휼
주님의 법을 지키는 것, 그것은 자신의 의지와 결단만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 법에 대한 사랑과 깨달음 그리고 열망이 어우러져 그 법을 지켜 행하게 되지만, 어디까지나 그 본질은 주님의 자비와 긍휼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되는 일이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시인은 본문을 통해 “나를 붙들어 살려주시고”(116)라고 했고 “나를 붙들어 주십시오”(117)라며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 법이 소중하고 따라야 할 법임을 깨닫긴 하지만 그게 자신의 의지대로 되질 않는다는 솔직한 고백일 터입니다. 나를 ‘붙들어 달라’는 부탁은 자신의 의지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는 수동적인 태도이면서 동시에 주님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려는 능동적인 태도라는 이중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되니까, 주님의 주권에 자신의 의지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서에서 가르치는 믿음의 본질이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이루신 구원사역의 본질도 바로 그런 주님의 은총입니다.
2. 주님의 법을 짓밟는 사람들
주님의 법을 소중히 여기고 따른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 법을 짓밟는 사람들이 있음을 본문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먼저, “주님의 율례에서 떠나는 자”(118)입니다. 왜, 주님의 율례에서 떠나는 것일까요? 둘 중 하나입니다. 게으르거나 무지함 때문입니다. 게으르거나 무지함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허물을 볼 줄 모른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주님께 ‘붙들어 달라’는 기도 대신 주님의 율례를 떠나고 마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는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자를 “억압하는 자들”(121)입니다. 자신들의 삶 속에서 보여주지 못하는 공의와 정의이기에 훼방을 놓는 것입니다. 그게 억압으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그리고 “오만한 자들”(122)입니다. 남들을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로 보는 자세입니다. 자신의 허물대신 남의 허무만 볼 줄 아는 짝눈을 소유한 사람들이지요. 그런 사람들이 “주님의 법을 짓밟아 버렸”(126)다고 시인은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들이 사용하는 수단은 속임수와 억압, 모든 거짓 행위들입니다. 율례를 따르지 않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훼방을 놓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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