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008 짐을 대신 져주시는 하느님
2013.10.08 20:52
||0||0131008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시편68:19-35
. 내 용: 짐을 대신 져주시는 주님
1. 우리의 짐을 대신 짊어지시고 구원이 되시는 하느님을 찬양하라.
2. 날마다 찬양하고 회중 가운데서 찬양함으로 하느님의 능력을 선포하라는 말씀.
. 묵상 말씀: “하느님께서 우리의 짐을 대신 짊어지신다”(시68:19).
1. 어머니 하느님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은유(Metaphor)들은 주로 아버지의 성(性)입니다. 강하고 권위적인 그런 모습들 말입니다. 그렇게 조성되어온 하느님에 대한 은유들을 갖고 현대 실천신학자들은 “KINGAFAP”이란 신조어를 만들었습니다. 왕(King)과 전능하신 신(God Almighty), 그리고 아버지와 보호자(Father, Protect)라는 용어를 합성해놓은 단어입니다. 그러나 지적인 성찰과 진전된 의식으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서 하느님에 대한 속성의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동안 아버지 성에만 국한되었던 하느님의 속성이 어머니의 성으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이죠. 이미 존재하던 것을 이제 찾아냈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오늘 본문에 시편기자는 ‘우리의 짐을 대신 짊어지신다’(19)고 했습니다. 그런 짐을 없게 하시는 하느님이 아니라 그런 짐을 대신 지심으로 고통을 분담하시는 하느님이시라는 고백입니다. 당신의 백성들이 당하는 시련과 고난 속에 임재 하셔서 함께 고통을 분담하시는 그런 하느님 말입니다. 고난당하는 인간 앞에서 뒷짐 지고 계시는 하느님이 아니라 함께 시련과 고난을 당하시는 그런 어머니 성(性)을 지닌 하느님 말입니다.
2. 하느님을 찬양하라
그런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결국 찬양입니다. 그가 이루신 놀라운 일들과 앞으로 이루실 일들에 대한 기대가 결국 찬양으로 나타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주님을 찬양하라는 말씀은 시편 전반에 흐르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 찬양의 방식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먼저 “날마다”(19) 찬송하라고 했습니다. 항상, 언제 어디서나 찬양하라는 뜻이지요. 이는 조건이 주어지든 주어지지 않던 관계가 없습니다. 또한 “회중 한가운데서 하느님을 찬양하라”(26)고 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서 주님을 노래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 한가운데서 하라는 것은 분명한 의도를 내포합니다. 그 의도는 뭘까요? 바로 “하느님의 능력을 선포하라”(34)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 그것이 하느님의 능력임을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는 하느님, 그러한 찬양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능력을 만방에 알게 하시려는 것이지요. 우리의 삶 속에 하느님의 능력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하느님의 은총이요 복입니다.
. 읽은 말씀: 시편68:19-35
. 내 용: 짐을 대신 져주시는 주님
1. 우리의 짐을 대신 짊어지시고 구원이 되시는 하느님을 찬양하라.
2. 날마다 찬양하고 회중 가운데서 찬양함으로 하느님의 능력을 선포하라는 말씀.
. 묵상 말씀: “하느님께서 우리의 짐을 대신 짊어지신다”(시68:19).
1. 어머니 하느님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은유(Metaphor)들은 주로 아버지의 성(性)입니다. 강하고 권위적인 그런 모습들 말입니다. 그렇게 조성되어온 하느님에 대한 은유들을 갖고 현대 실천신학자들은 “KINGAFAP”이란 신조어를 만들었습니다. 왕(King)과 전능하신 신(God Almighty), 그리고 아버지와 보호자(Father, Protect)라는 용어를 합성해놓은 단어입니다. 그러나 지적인 성찰과 진전된 의식으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서 하느님에 대한 속성의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동안 아버지 성에만 국한되었던 하느님의 속성이 어머니의 성으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이죠. 이미 존재하던 것을 이제 찾아냈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오늘 본문에 시편기자는 ‘우리의 짐을 대신 짊어지신다’(19)고 했습니다. 그런 짐을 없게 하시는 하느님이 아니라 그런 짐을 대신 지심으로 고통을 분담하시는 하느님이시라는 고백입니다. 당신의 백성들이 당하는 시련과 고난 속에 임재 하셔서 함께 고통을 분담하시는 그런 하느님 말입니다. 고난당하는 인간 앞에서 뒷짐 지고 계시는 하느님이 아니라 함께 시련과 고난을 당하시는 그런 어머니 성(性)을 지닌 하느님 말입니다.
2. 하느님을 찬양하라
그런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결국 찬양입니다. 그가 이루신 놀라운 일들과 앞으로 이루실 일들에 대한 기대가 결국 찬양으로 나타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주님을 찬양하라는 말씀은 시편 전반에 흐르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 찬양의 방식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먼저 “날마다”(19) 찬송하라고 했습니다. 항상, 언제 어디서나 찬양하라는 뜻이지요. 이는 조건이 주어지든 주어지지 않던 관계가 없습니다. 또한 “회중 한가운데서 하느님을 찬양하라”(26)고 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서 주님을 노래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 한가운데서 하라는 것은 분명한 의도를 내포합니다. 그 의도는 뭘까요? 바로 “하느님의 능력을 선포하라”(34)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 그것이 하느님의 능력임을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는 하느님, 그러한 찬양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능력을 만방에 알게 하시려는 것이지요. 우리의 삶 속에 하느님의 능력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하느님의 은총이요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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