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907 하느님이 불편한 사람들
2013.09.07 06:16
||0||0130907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시53:1-6
. 내 용: 하느님이 불편한 사람들
1. ‘하느님을 없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바른 일을 하지 않는다.
2. 그런 사람들은 하느님 없는 곳에서도 하느님을 두려워할 것이다.
. 묵상 말씀: “그들은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도 크게 두려워할 것이다”(시53:5).
1. 불편한 하느님
하느님의 존재 유무를 따지는 일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이 세상의 최초의 물질과 그 기원을 설명하거나 검증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우주론적 증명 뿐 아니라 존재론적으로도 하느님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단지 하느님을 그 마음에 두기 싫어할 뿐이지요. 그래서 하느님이 만들어 놓으신 양심이 그를 불편하게 할 뿐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기를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타락한 마음자리에 내버려 두셔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도록 놓아 두셨습니다”(롬1:28). 하느님을 인정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존재와 계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미 그 마음이 닫혀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마음이 열린 사람에게는 온 세상이 하느님의 존재를 알리는 전령사(傳令使)로 보입니다. 한 송이 백합화와 하늘을 나는 한 마리 새에게서 하느님의 존재를 느끼며 노래할 수 있는 것이지요. 결국, 어리석은 사람에게 있어 하느님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불편한 분이 되는 것입니다. 엄연히 존재하는데 말입니다.
2. 원초적인 두려움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들은 두려움입니다. “그들은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도 크게 두려워할 것이다”(5)라고 했습니다. 두려움이 없는 곳, 두려워할 장소도 아니고 두려워할 내용도 아닌데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 왠지 모를 막연한 두려움. 머리에서는 두려워하지 않는데 무엇인지 모를 두려움이 삶 전체를 감싸오는 그런 막막함이랄까요? 자신은 최선을 다하고 살았지만 왠지 등 뒤가 허전하고 공허한, 그런 느낌 말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애써 무시하는, 그래서 하느님 없이 살고자 했던 사람들이 숙명적으로 안고 가야할 두려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부정하면 할수록 하느님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시는 분입니다. 두려움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존재를 기뻐하며 그 분을 의지하며 살았던 다윗은 달랐습니다. 부족함이 있지만 부족함을 모르고 지냈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어라”(시23:1)는 고백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부족함이 오히려 감사의 조건이 되는 역설, 그것이 하느님을 인정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 읽은 말씀: 시53:1-6
. 내 용: 하느님이 불편한 사람들
1. ‘하느님을 없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바른 일을 하지 않는다.
2. 그런 사람들은 하느님 없는 곳에서도 하느님을 두려워할 것이다.
. 묵상 말씀: “그들은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도 크게 두려워할 것이다”(시53:5).
1. 불편한 하느님
하느님의 존재 유무를 따지는 일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이 세상의 최초의 물질과 그 기원을 설명하거나 검증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우주론적 증명 뿐 아니라 존재론적으로도 하느님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단지 하느님을 그 마음에 두기 싫어할 뿐이지요. 그래서 하느님이 만들어 놓으신 양심이 그를 불편하게 할 뿐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기를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타락한 마음자리에 내버려 두셔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도록 놓아 두셨습니다”(롬1:28). 하느님을 인정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존재와 계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미 그 마음이 닫혀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마음이 열린 사람에게는 온 세상이 하느님의 존재를 알리는 전령사(傳令使)로 보입니다. 한 송이 백합화와 하늘을 나는 한 마리 새에게서 하느님의 존재를 느끼며 노래할 수 있는 것이지요. 결국, 어리석은 사람에게 있어 하느님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불편한 분이 되는 것입니다. 엄연히 존재하는데 말입니다.
2. 원초적인 두려움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들은 두려움입니다. “그들은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도 크게 두려워할 것이다”(5)라고 했습니다. 두려움이 없는 곳, 두려워할 장소도 아니고 두려워할 내용도 아닌데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 왠지 모를 막연한 두려움. 머리에서는 두려워하지 않는데 무엇인지 모를 두려움이 삶 전체를 감싸오는 그런 막막함이랄까요? 자신은 최선을 다하고 살았지만 왠지 등 뒤가 허전하고 공허한, 그런 느낌 말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애써 무시하는, 그래서 하느님 없이 살고자 했던 사람들이 숙명적으로 안고 가야할 두려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부정하면 할수록 하느님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시는 분입니다. 두려움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존재를 기뻐하며 그 분을 의지하며 살았던 다윗은 달랐습니다. 부족함이 있지만 부족함을 모르고 지냈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어라”(시23:1)는 고백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부족함이 오히려 감사의 조건이 되는 역설, 그것이 하느님을 인정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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