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514 리워야단을 통해 주신 교훈
2013.05.14 09:48
||0||0130514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욥기41:1-24
. 내 용: 리워야단을 통해 주신 교훈
1. 리워야단의 사냥의 어려움을 통해 주신 교훈(1-11).
2. 리워야단의 지체 구조를 통해 주신 교훈(12-34).
. 묵상 말씀: “이 세상에는 그럴 사람이 없다”(욥41:11).
1. 리워야단
전 장에서 하느님께서는 베헤못을 통해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베헤못의 억센 힘과 뼈대, 그리고 위력을 언급하시며 하느님의 창조섭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전 장의 베헤못 대신 리워야단으로 바뀐 셈입니다. 리워야단은 개역성서에서는 악어로 번역을 했습니다. 그러나 리워야단은 엄밀한 의미에서 악어와는 다릅니다. 히브리어인 리워야단은 본래 용이나 큰 뱀을 뜻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묘사한 것을 토대로 보면, 용이나 큰 뱀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악어라고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새번역 성서에서는 이를 두고 히브리 원문은 리워야단으로 표시한 것입니다. 어쨌든 리워야단은 본문에 언급한대로 아무도 그것을 제압할 수 없을 만큼 강인하고 단단한 짐승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이 세상에 그럴 사람이 없다”(11)고 한 것입니다. 불이 나오는 입, 연기가 쏟아지는 콧구멍, 쇠로 입힌 듯 한 살갗, 돌처럼 단단한 심장, 그래서 리워야단은 사람들의 몽둥이를 지푸라기쯤으로 생각하고 창이 날아오는 소리에는 코웃음만 친다고 하였습니다.
2. 다시 반복되는 교훈
전 장의 베헤못에 이어 본문에서 리워야단을 언급한 이유는 전 장과 같습니다. 하느님의 창조섭리에 대한 깨달음과 아울러 그 앞에서 인간의 연약함과 한계를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 깨달음을 통해 인간은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순종이 가능한 것이지요. 욥이 줄기차게 자신의 결백과 무죄를 주장하며 탄식과 절망을 보여준 것은 하느님의 섭리와 뜻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그 분의 뜻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설령 안다고 해도 그것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모른다는 것을 알 뿐이라는 고백이 어찌 보면 하느님의 뜻과 섭리를 대하는 태도일 터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듣도 보도 못한 리워야단일까요? 이는 우리가 알고 있고 인식할 수 있는 범주가 그만큼 제한되어 있음을 가르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욥은 그러한 가르침 속에서 참된 때달음과 참된 회개를 하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신앙은 깨달음이고 그 깨달음은 하느님의 가르침에서 나오며, 그 가르침은 결국 우리의 무지와 한계에 대한 인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읽은 말씀: 욥기41:1-24
. 내 용: 리워야단을 통해 주신 교훈
1. 리워야단의 사냥의 어려움을 통해 주신 교훈(1-11).
2. 리워야단의 지체 구조를 통해 주신 교훈(12-34).
. 묵상 말씀: “이 세상에는 그럴 사람이 없다”(욥41:11).
1. 리워야단
전 장에서 하느님께서는 베헤못을 통해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베헤못의 억센 힘과 뼈대, 그리고 위력을 언급하시며 하느님의 창조섭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전 장의 베헤못 대신 리워야단으로 바뀐 셈입니다. 리워야단은 개역성서에서는 악어로 번역을 했습니다. 그러나 리워야단은 엄밀한 의미에서 악어와는 다릅니다. 히브리어인 리워야단은 본래 용이나 큰 뱀을 뜻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묘사한 것을 토대로 보면, 용이나 큰 뱀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악어라고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새번역 성서에서는 이를 두고 히브리 원문은 리워야단으로 표시한 것입니다. 어쨌든 리워야단은 본문에 언급한대로 아무도 그것을 제압할 수 없을 만큼 강인하고 단단한 짐승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이 세상에 그럴 사람이 없다”(11)고 한 것입니다. 불이 나오는 입, 연기가 쏟아지는 콧구멍, 쇠로 입힌 듯 한 살갗, 돌처럼 단단한 심장, 그래서 리워야단은 사람들의 몽둥이를 지푸라기쯤으로 생각하고 창이 날아오는 소리에는 코웃음만 친다고 하였습니다.
2. 다시 반복되는 교훈
전 장의 베헤못에 이어 본문에서 리워야단을 언급한 이유는 전 장과 같습니다. 하느님의 창조섭리에 대한 깨달음과 아울러 그 앞에서 인간의 연약함과 한계를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 깨달음을 통해 인간은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순종이 가능한 것이지요. 욥이 줄기차게 자신의 결백과 무죄를 주장하며 탄식과 절망을 보여준 것은 하느님의 섭리와 뜻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그 분의 뜻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설령 안다고 해도 그것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모른다는 것을 알 뿐이라는 고백이 어찌 보면 하느님의 뜻과 섭리를 대하는 태도일 터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듣도 보도 못한 리워야단일까요? 이는 우리가 알고 있고 인식할 수 있는 범주가 그만큼 제한되어 있음을 가르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욥은 그러한 가르침 속에서 참된 때달음과 참된 회개를 하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신앙은 깨달음이고 그 깨달음은 하느님의 가르침에서 나오며, 그 가르침은 결국 우리의 무지와 한계에 대한 인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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