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423 근거 있는 자신감
2013.04.23 05:42
||0||0130423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욥기27:1-23
. 내 용: 세 친구에 대한 욥의 답변
1. 욥의 세 친구가 전해준 조언과 충고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답변을 하고 있음.
2. 자신의 의에 대한 의지를 언급함.(1-12)
3. 악인에 대한 종국적인 심판을 언급함.(13-23)
. 묵상 말씀: “나는 죽기까지 내 결백을 주장하겠다”(욥27:5).
1. 온전한 믿음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자신의 신앙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러면 하느님에 대한 신앙고백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것은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부족함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거기서 하느님의 권능에 대한 신뢰와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경외심이 생기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거기서 끝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것은 지나간 과거와 현재에 대한 성찰에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대한 비전과 결단, 다짐이 있어야 합니다. 과거와 현재에 대한 성찰은 미래에 대한 보장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게 뭘까요? 오늘 본문에서 욥은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전의 욥이 보여준 자세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성찰을 통해 자신의 결백과 무죄함을 주장하였고 그것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미래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죽기까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겠다”는 게 바로 그런 모습 아닐까요? 그게 바로 온전한 믿음일 것입니다.
2. 근거 있는 자신감
욥은 오늘 본문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데 있어 장래에도 그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게 호흡이 남아있는 한...악한 말을 하지 않으며, 죽기까지 내 결백을 주장하겠다. 내 평생에 양심에 꺼림칙한 날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지나간 과거에 대한 결백을 주장하는 것이라면 과거의 일이니 그렇구나, 할 것입니다만, 장래의 모습까지 그렇게 단호하게 의지를 보여준다는 것, 이는 예삿일이 아닙니다. 아직 도달하지 않은 미래의 일입니다. 과연 미래의 일에 대하여 그렇게 확신에 찬 결백을 주장 할 수 있는 걸까요? 그 근거는 무엇일까요? 근거 없이 외친 호기였을까요? 본문 후반부에서 욥은 악인의 심판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현세에서의 삶은 혼란스럽지만 그러나 종말론적인 차원에서 악인은 반드시 심판을 당한다는 확신입니다. 욥의 주장이 호기가 아니라 그런 확신에서 온 결단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셈입니다.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습니다”(히9:27).
. 읽은 말씀: 욥기27:1-23
. 내 용: 세 친구에 대한 욥의 답변
1. 욥의 세 친구가 전해준 조언과 충고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답변을 하고 있음.
2. 자신의 의에 대한 의지를 언급함.(1-12)
3. 악인에 대한 종국적인 심판을 언급함.(13-23)
. 묵상 말씀: “나는 죽기까지 내 결백을 주장하겠다”(욥27:5).
1. 온전한 믿음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자신의 신앙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러면 하느님에 대한 신앙고백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것은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부족함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거기서 하느님의 권능에 대한 신뢰와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경외심이 생기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거기서 끝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것은 지나간 과거와 현재에 대한 성찰에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대한 비전과 결단, 다짐이 있어야 합니다. 과거와 현재에 대한 성찰은 미래에 대한 보장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게 뭘까요? 오늘 본문에서 욥은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전의 욥이 보여준 자세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성찰을 통해 자신의 결백과 무죄함을 주장하였고 그것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미래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죽기까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겠다”는 게 바로 그런 모습 아닐까요? 그게 바로 온전한 믿음일 것입니다.
2. 근거 있는 자신감
욥은 오늘 본문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데 있어 장래에도 그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게 호흡이 남아있는 한...악한 말을 하지 않으며, 죽기까지 내 결백을 주장하겠다. 내 평생에 양심에 꺼림칙한 날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지나간 과거에 대한 결백을 주장하는 것이라면 과거의 일이니 그렇구나, 할 것입니다만, 장래의 모습까지 그렇게 단호하게 의지를 보여준다는 것, 이는 예삿일이 아닙니다. 아직 도달하지 않은 미래의 일입니다. 과연 미래의 일에 대하여 그렇게 확신에 찬 결백을 주장 할 수 있는 걸까요? 그 근거는 무엇일까요? 근거 없이 외친 호기였을까요? 본문 후반부에서 욥은 악인의 심판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현세에서의 삶은 혼란스럽지만 그러나 종말론적인 차원에서 악인은 반드시 심판을 당한다는 확신입니다. 욥의 주장이 호기가 아니라 그런 확신에서 온 결단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셈입니다.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습니다”(히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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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다짐과 결단들이 흐지부지 된것 투성이네요....
욥의 확고하고 단호한 미래에 대한 강한 결백의지를 보며
나자신도 죽기까지 결백을 주장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