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418 욥의 변화
2013.04.18 06:16
||0||0130418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욥기23:1-17
. 내 용: 엘리바스의 세 번째 조언에 대한 욥의 답변
1. 자신의 고통과 무죄함에 대한 하느님의 의로운 판단을 호소함.(1-7)
2. 자신의 끝없는 고난과 알 수 없는 하느님에 대한 탄식.(8-12)
3. 자신의 고통스런 현실에 대한 하느님의 주권적 섭리와 그 섭리에 대한 신뢰를 보여줌.(13-17)
. 묵상 말씀: “내가 무서워 떤 것은 어둠 때문도 아니고, 흑암이 나를 덮은 탓도 아니다”(욥23:17).
1. 욥의 변화된 모습과 표현들
1, 2차에 걸친 엘리바스의 조언과 그에 대한 욥의 답변에서 나타나는 표현들이 세 번째 답변이라 할 수 있는 본문에서는 나타나질 않고 있습니다. ‘헛된 소리, 입에 발린 말로 말끝마다 나를 괴롭힌다’는 핀잔 대신 하느님을 향한 호소로 일관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또한 인과응보론적인 원리로 자신을 공격하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무죄함과 결백을 주장하며 없는 힘을 쏟아내며 힘겨워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그렇게 힘을 빼는 모습 대신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판단을 호소하고 하느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대하여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고 있는 모습입니다. 물론 자신의 무죄와 결백을 호소하면서 억울함을 탄식으로 풀어내는 성숙하지 못한 태도도 조금은 보여주고 있습니다.(8-12)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실로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배경이 무엇일까요?
2. 태도의 변화
그 배경은 바로 욥의 시각이 변한 것입니다. 그가 바라보던 눈의 시각이 변한 것입니다. 자신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바라보던 눈과 자신을 공격하던 친구들을 바라보던 독기어린 눈길이 이제는 하느님을 향해 그 시각이 수정된 것입니다. 모든 고난과 고통의 모습을 바라보던 눈길이 이제는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께 고정된 것입니다. 그러니 불평과 불만 그리고 탄식으로 일관되던 표현들이 이제는 하느님을 향한 호소로 바뀐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스러운 현실만 바라볼 때는 자신의 무죄와 결백이 그렇게 절실했지만, 이제는 그 속에 담긴 교훈을 구하고 찾는 태도로 변했습니다. 눈길이 현실에 머물 때는 불평과 탄식이 난무했지만 그 눈길이 하느님을 향하고 나서는 간절한 호소로 변한 것입니다. 고난이라는 현실 보다는 그 속에 담긴 의미와 교훈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불평과 탄식이 변하여 간절한 소망이 된 것입니다. 시각이 변하면 태도가 변합니다. 태도가 변하면 표현이 달라집니다. 달라진 표현은 우리의 의식구조를 바꿔주는 외적인 동기가 됩니다.
. 읽은 말씀: 욥기23:1-17
. 내 용: 엘리바스의 세 번째 조언에 대한 욥의 답변
1. 자신의 고통과 무죄함에 대한 하느님의 의로운 판단을 호소함.(1-7)
2. 자신의 끝없는 고난과 알 수 없는 하느님에 대한 탄식.(8-12)
3. 자신의 고통스런 현실에 대한 하느님의 주권적 섭리와 그 섭리에 대한 신뢰를 보여줌.(13-17)
. 묵상 말씀: “내가 무서워 떤 것은 어둠 때문도 아니고, 흑암이 나를 덮은 탓도 아니다”(욥23:17).
1. 욥의 변화된 모습과 표현들
1, 2차에 걸친 엘리바스의 조언과 그에 대한 욥의 답변에서 나타나는 표현들이 세 번째 답변이라 할 수 있는 본문에서는 나타나질 않고 있습니다. ‘헛된 소리, 입에 발린 말로 말끝마다 나를 괴롭힌다’는 핀잔 대신 하느님을 향한 호소로 일관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또한 인과응보론적인 원리로 자신을 공격하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무죄함과 결백을 주장하며 없는 힘을 쏟아내며 힘겨워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그렇게 힘을 빼는 모습 대신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판단을 호소하고 하느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대하여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고 있는 모습입니다. 물론 자신의 무죄와 결백을 호소하면서 억울함을 탄식으로 풀어내는 성숙하지 못한 태도도 조금은 보여주고 있습니다.(8-12)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실로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배경이 무엇일까요?
2. 태도의 변화
그 배경은 바로 욥의 시각이 변한 것입니다. 그가 바라보던 눈의 시각이 변한 것입니다. 자신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바라보던 눈과 자신을 공격하던 친구들을 바라보던 독기어린 눈길이 이제는 하느님을 향해 그 시각이 수정된 것입니다. 모든 고난과 고통의 모습을 바라보던 눈길이 이제는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께 고정된 것입니다. 그러니 불평과 불만 그리고 탄식으로 일관되던 표현들이 이제는 하느님을 향한 호소로 바뀐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스러운 현실만 바라볼 때는 자신의 무죄와 결백이 그렇게 절실했지만, 이제는 그 속에 담긴 교훈을 구하고 찾는 태도로 변했습니다. 눈길이 현실에 머물 때는 불평과 탄식이 난무했지만 그 눈길이 하느님을 향하고 나서는 간절한 호소로 변한 것입니다. 고난이라는 현실 보다는 그 속에 담긴 의미와 교훈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불평과 탄식이 변하여 간절한 소망이 된 것입니다. 시각이 변하면 태도가 변합니다. 태도가 변하면 표현이 달라집니다. 달라진 표현은 우리의 의식구조를 바꿔주는 외적인 동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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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의 시각도 하느님을 향해 바라보면서
불평과 탄식을 소망으로 바꾸어야 할텐데
마음과 생각으로만은 안되니 어찌해야 할지요?
아직도 제대로 하느님을 향하지 않은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