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417 무지와 억지, 그리고 고집
2013.04.17 05:40
||0||0130417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욥기22:1-30
. 내 용: 엘리바스의 세 번째 조언
1. 욥이 잃은 모든 것이 권세를 이용하여 탈취한 것으로 규정하며 악인으로 취급함.(1-11)
2. 그러한 악인에 대한 심판과 의인에 대한 하느님의 보응 언급.(12-20)
3. 회개하면 하느님이 회복시켜 주실 것을 언급.(21-30)
. 묵상 말씀: “네 죄가 많고 네 죄악이 끝이 없으니, 그러한 것 아니냐?”(욥22:5).
1. 무지와 억지와 고집
성서에서 가르치는 최고의 가치와 덕목은 사랑과 겸손입니다. 사랑을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라고 한다면, 겸손은 그 사랑을 위한 전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겸손함 없이 사랑이라는 가치를 소유도 할 수 없고 실천해 나갈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 겸손은 자신의 한계와 부족함을 인식하는데서 시작합니다. 결국, 자신의 부족함으로 인식하는 것이 하느님을 만나는 첫 번째 관문이 되는 셈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처럼 말입니다.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눅5:8).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절대자와의 만남, 거기서 회개와 신앙고백이 이뤄지는 것이지요. 그러한 자신의 한계와 부족함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현상들은 바로 무지와 억지, 고집입니다. 오늘 본문 엘리바스의 조언을 보면 그런 모습들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단정하는 것도 엘리바스가 범하는 오류일수도 있겠습니다만, 하느님의 자비와 긍휼을 체험한 사람이라면 도저히 그러할 수 없는 말들이 난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매도(賣渡)
그러한 무지와 억지, 고집을 지닌 사람들이 범하는 오류가 바로 매도입니다. 자신의 기준과 잣대로 모든 것을 단정하고 규정하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이름을 부리기는 하지만 이미 그는 하느님의 자리를 꿰차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자리를 꿰찬 엘리바스가 상처투성이가 된 욥에게 근엄하게 꾸짖는 모습, 그게 오늘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전반적인 풍경입니다. ‘친족의 재산을 압류하고, 권세를 이용하여 땅을 차지했다’고 야단을 칩니다. 하지도 않은 말을 한 것처럼 억지를 부립니다. 욥이 하느님을 “하늘에서만 왔다 갔다 하시는 분”(13-14)으로 말 한 적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축복과 은총을 단지 의인에게만 베푸는 시혜적이고 특혜인 양 왜곡시키면서, 욥의 회개와 각성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죄인 취급하며 아예 사람으로 대접을 포기한 모습입니다. 조금 있으면 아예 매질이라고 할 기세입니다. 이건 사랑도 아니고 믿음도 아닙니다. 이것은 만용이며 폭력입니다. 사람을 매도해서는 안 됩니다.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 읽은 말씀: 욥기22:1-30
. 내 용: 엘리바스의 세 번째 조언
1. 욥이 잃은 모든 것이 권세를 이용하여 탈취한 것으로 규정하며 악인으로 취급함.(1-11)
2. 그러한 악인에 대한 심판과 의인에 대한 하느님의 보응 언급.(12-20)
3. 회개하면 하느님이 회복시켜 주실 것을 언급.(21-30)
. 묵상 말씀: “네 죄가 많고 네 죄악이 끝이 없으니, 그러한 것 아니냐?”(욥22:5).
1. 무지와 억지와 고집
성서에서 가르치는 최고의 가치와 덕목은 사랑과 겸손입니다. 사랑을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라고 한다면, 겸손은 그 사랑을 위한 전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겸손함 없이 사랑이라는 가치를 소유도 할 수 없고 실천해 나갈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 겸손은 자신의 한계와 부족함을 인식하는데서 시작합니다. 결국, 자신의 부족함으로 인식하는 것이 하느님을 만나는 첫 번째 관문이 되는 셈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처럼 말입니다.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눅5:8).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절대자와의 만남, 거기서 회개와 신앙고백이 이뤄지는 것이지요. 그러한 자신의 한계와 부족함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현상들은 바로 무지와 억지, 고집입니다. 오늘 본문 엘리바스의 조언을 보면 그런 모습들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단정하는 것도 엘리바스가 범하는 오류일수도 있겠습니다만, 하느님의 자비와 긍휼을 체험한 사람이라면 도저히 그러할 수 없는 말들이 난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매도(賣渡)
그러한 무지와 억지, 고집을 지닌 사람들이 범하는 오류가 바로 매도입니다. 자신의 기준과 잣대로 모든 것을 단정하고 규정하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이름을 부리기는 하지만 이미 그는 하느님의 자리를 꿰차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자리를 꿰찬 엘리바스가 상처투성이가 된 욥에게 근엄하게 꾸짖는 모습, 그게 오늘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전반적인 풍경입니다. ‘친족의 재산을 압류하고, 권세를 이용하여 땅을 차지했다’고 야단을 칩니다. 하지도 않은 말을 한 것처럼 억지를 부립니다. 욥이 하느님을 “하늘에서만 왔다 갔다 하시는 분”(13-14)으로 말 한 적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축복과 은총을 단지 의인에게만 베푸는 시혜적이고 특혜인 양 왜곡시키면서, 욥의 회개와 각성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죄인 취급하며 아예 사람으로 대접을 포기한 모습입니다. 조금 있으면 아예 매질이라고 할 기세입니다. 이건 사랑도 아니고 믿음도 아닙니다. 이것은 만용이며 폭력입니다. 사람을 매도해서는 안 됩니다.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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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 다가설 수 있었던 지난날들이 생각납니다.
비온뒤에 땅이 굳어지 듯이
세상 살면서 온갖 시련을 겪고 나서야
더욱 굳건한 믿음을 갖게 되는게 대부분의 우리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는 것이 하느님을 만나는 첫 번째 관문"
이라는 말씀 확 와닿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