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328 욥의 진정성
2013.03.28 06:32
||0||0130328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욥기9:25-35
. 내 용: 욥의 진정성
1.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수고가 소용없고 부질없음을 고백(25-31).
2. 자신의 수고가 헛됨을 고백한 후,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는 욥(32-35).
. 묵상 말씀: “내게 소원이 있다면, 내가 더 두려워 떨지 않도록, 하느님이 채찍을 거두시는 것”(욥9:34).
1. 욥의 진정성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나 현상 보다 진실과 본질이 중요한 법입니다. 그 진실과 본질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때때로 생략 된 채 사건과 사물의 의미를 왜곡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진실과 본질, 그것을 일컬어 우리는 진정성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욥의 진정성을 보여줍니다. 겉으로는 불만을 쏟아놓고 탄식하는 모습입니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항변하는 모습도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그 모든 게 소용없다는 고백입니다. 그 모든 게 극심한 고통 속에서 나오는 신음 소리였던 셈입니다. “내가 비누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닦아도 주님께서 나를 시궁창에 처넣으시니”(30) 나의 수고가 뭔 소용이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나아가 “하느님이 채찍을 거두시는 것”(34)만이 해결책임을 고백하며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는 모습입니다. 사탄의 호언장담(욥2:5) 무산되는 순간입니다. 욥에 대한 하느님의 평가가 틀리지 않았음을 전해주는 말씀입니다.
2. 의인
그동안 고난 앞에서 허우적대며 탄식과 불만을 쏟아놓고 자신의 결백으로 항변하는 욥의 모습을 보며 ‘이러다가 사탄의 예언이 적중하는 게 아닌가’하는 조바심이 났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탄이 장담했던 것과는 달리 욥은 그 선을 넘지 않았습니다. 사탄의 의도는 ‘욥이 고난 앞에서 절망에 빠져 하느님을 부정하고 떠나버릴 줄 알았는데’ 그게 안 되더라는 뜻입니다. 그러고 보면 욥기에서 보여주는 의인의 모습이란 완벽한 그 어떤 신적인 존재를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인간의 굴레를 완전히 벗어버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고난 앞에서 발악하며 회의하는 모습까지는 용납되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도 듭니다. 중요한 것은 그 욥이 그렇게 탄식과 발악과 항변을 쏟아놓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항상 하느님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절대자와 그 분의 주권에 대한 신뢰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 신뢰에 대한 회의는 있었지만 그 신뢰 자체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 그게 욥의 의인됨의 핵심 요소가 아닐까요?
. 읽은 말씀: 욥기9:25-35
. 내 용: 욥의 진정성
1.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수고가 소용없고 부질없음을 고백(25-31).
2. 자신의 수고가 헛됨을 고백한 후,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는 욥(32-35).
. 묵상 말씀: “내게 소원이 있다면, 내가 더 두려워 떨지 않도록, 하느님이 채찍을 거두시는 것”(욥9:34).
1. 욥의 진정성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나 현상 보다 진실과 본질이 중요한 법입니다. 그 진실과 본질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때때로 생략 된 채 사건과 사물의 의미를 왜곡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진실과 본질, 그것을 일컬어 우리는 진정성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욥의 진정성을 보여줍니다. 겉으로는 불만을 쏟아놓고 탄식하는 모습입니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항변하는 모습도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그 모든 게 소용없다는 고백입니다. 그 모든 게 극심한 고통 속에서 나오는 신음 소리였던 셈입니다. “내가 비누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닦아도 주님께서 나를 시궁창에 처넣으시니”(30) 나의 수고가 뭔 소용이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나아가 “하느님이 채찍을 거두시는 것”(34)만이 해결책임을 고백하며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는 모습입니다. 사탄의 호언장담(욥2:5) 무산되는 순간입니다. 욥에 대한 하느님의 평가가 틀리지 않았음을 전해주는 말씀입니다.
2. 의인
그동안 고난 앞에서 허우적대며 탄식과 불만을 쏟아놓고 자신의 결백으로 항변하는 욥의 모습을 보며 ‘이러다가 사탄의 예언이 적중하는 게 아닌가’하는 조바심이 났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탄이 장담했던 것과는 달리 욥은 그 선을 넘지 않았습니다. 사탄의 의도는 ‘욥이 고난 앞에서 절망에 빠져 하느님을 부정하고 떠나버릴 줄 알았는데’ 그게 안 되더라는 뜻입니다. 그러고 보면 욥기에서 보여주는 의인의 모습이란 완벽한 그 어떤 신적인 존재를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인간의 굴레를 완전히 벗어버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고난 앞에서 발악하며 회의하는 모습까지는 용납되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도 듭니다. 중요한 것은 그 욥이 그렇게 탄식과 발악과 항변을 쏟아놓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항상 하느님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절대자와 그 분의 주권에 대한 신뢰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 신뢰에 대한 회의는 있었지만 그 신뢰 자체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 그게 욥의 의인됨의 핵심 요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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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만 똑바로 살면되지 뭐, 남에게 피해 끼치지 않고,죄 짓지 않고 살면 되지
무슨 교회니 하느님이니 찾을게 뭐람?'
하는 생각을 하고 살았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별로 똑바로 살지도 않았을 뿐더러
이러한 도덕신앙 윤리신앙에는 결정적으로 하느님이 빠져 있더라구요..
고난과 역경을 통해 하느님을 알게 하심을 감사드리는 기도로
이 아침 하루를 시작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