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316 욥의 탄식- 삶의 회의
2013.03.16 06:25
||0||0130316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욥기3:20-26
. 내 용: 욥의 탄식- 삶의 회의
1. 자기 부정과 죽음 동경에 이어 삶의 회를 탄식으로 쏟아내는 욥의 모습.
2. 죽기를 기다려도 죽어지지 않고 식탁 앞에서도 탄식만 나오는 자신의 욥의 모습 속에서 삶의 희망 대신 절망을 보게 됨.
. 묵상 말씀: “내게는 평화도 없고, 안정도 없고, 안식마저 사라지고, 두려움만 끝없이 밀려온다!”(욥3:26).
1. 쓰디쓴 인생
본문에 나타나는 욥의 심정은 희망은 그 흔적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죽을 방법이 없을까, 죽음을 찾아 헤매며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모습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기쁘고 즐거운 일인데,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상실했으니 이제 살아갈 힘도 없고 동기도 없어진 셈입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생명을 자신이 마감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게 탄식할 줄 아는 사람은 그런 차원에서 그나마 희망을 보게 됩니다. 문제는 출구가 안 보인다는 점입니다. 안정과 안식이 사라진 마당에 두려움만 끝없이 밀려오니 환장할 노릇입니다. 욥에 대한 한없는 연민이 몰려옵니다.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어 일주일 동안 한 마디 말도 못하고 곁을 지켰던 욥의 세 친구가 이해가 됩니다. 하느님께서 의인으로 인정한 욥도 그러했는데, 누군들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요? 그런 차원에서 고난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게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자, 그러니 뭘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운명의 굴레
우리는 보통 ‘운명’이라는 말을 잘 쓰곤 합니다. 운명이란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를 뜻합니다. 세상에, 인생이 자기 뜻대로 되는 법이 어디 있나요?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좌절과 탄식이 나오는 게 아닐까요? 운명이란 한 마디로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태도입니다. 나아가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현실 속에서 당하는 극심한 고통, 그 속에서 욥이 쏟아냈던 자기 부정, 죽음 동경, 삶의 회의는 하느님의 영역에 대한 침범의 결과들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자신의 의지와 기준으로 단정 짓는 일, 그게 바로 신의 영역에 대한 침범입니다. 운명이라는 굴레를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습니다. 미래에 펼쳐질 무한한 가능성을 남겨 둘 줄 아는 태도, 그게 하느님의 영역을 인정하는 모습이요, 거기서 희망이 생기는 법입니다.
. 읽은 말씀: 욥기3:20-26
. 내 용: 욥의 탄식- 삶의 회의
1. 자기 부정과 죽음 동경에 이어 삶의 회를 탄식으로 쏟아내는 욥의 모습.
2. 죽기를 기다려도 죽어지지 않고 식탁 앞에서도 탄식만 나오는 자신의 욥의 모습 속에서 삶의 희망 대신 절망을 보게 됨.
. 묵상 말씀: “내게는 평화도 없고, 안정도 없고, 안식마저 사라지고, 두려움만 끝없이 밀려온다!”(욥3:26).
1. 쓰디쓴 인생
본문에 나타나는 욥의 심정은 희망은 그 흔적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죽을 방법이 없을까, 죽음을 찾아 헤매며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모습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기쁘고 즐거운 일인데,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상실했으니 이제 살아갈 힘도 없고 동기도 없어진 셈입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생명을 자신이 마감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게 탄식할 줄 아는 사람은 그런 차원에서 그나마 희망을 보게 됩니다. 문제는 출구가 안 보인다는 점입니다. 안정과 안식이 사라진 마당에 두려움만 끝없이 밀려오니 환장할 노릇입니다. 욥에 대한 한없는 연민이 몰려옵니다.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어 일주일 동안 한 마디 말도 못하고 곁을 지켰던 욥의 세 친구가 이해가 됩니다. 하느님께서 의인으로 인정한 욥도 그러했는데, 누군들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요? 그런 차원에서 고난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게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자, 그러니 뭘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운명의 굴레
우리는 보통 ‘운명’이라는 말을 잘 쓰곤 합니다. 운명이란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를 뜻합니다. 세상에, 인생이 자기 뜻대로 되는 법이 어디 있나요?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좌절과 탄식이 나오는 게 아닐까요? 운명이란 한 마디로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태도입니다. 나아가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현실 속에서 당하는 극심한 고통, 그 속에서 욥이 쏟아냈던 자기 부정, 죽음 동경, 삶의 회의는 하느님의 영역에 대한 침범의 결과들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자신의 의지와 기준으로 단정 짓는 일, 그게 바로 신의 영역에 대한 침범입니다. 운명이라는 굴레를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습니다. 미래에 펼쳐질 무한한 가능성을 남겨 둘 줄 아는 태도, 그게 하느님의 영역을 인정하는 모습이요, 거기서 희망이 생기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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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희망만 있으면 이 절망에서 벗어 날텐데 희망을 주소서' 라는 제목의 기도를 할 당시가 생각납니다.
'대체 저에게 희망이 보이지 않는데 어디서 희망을 찾아야 하나요?'
몇주후 주일 설교말씀중에 김목사님께서
"희망은 믿음에서 생깁니다."는 말씀을 하셨던게 생각납니다.
오늘 또 한가지 마음속에 새겨둘 말씀이 생겼습니다.
"미래에 펼쳐질 무한한 가능성을 남겨 둘 줄 아는 태도,.....거기서 희망이 생기는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