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608 엘리사에게 일어난 기적과 사건
2012.06.08 06:58
||0||0120608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열왕기하2:19-25
. 내 용: 엘리사의 기적
1. 여리고 성읍사람들이 '물 때문에 임산부들이 유산을 한다'는 말을 전해들은 엘리사, 그 곳 물을 깨끗하게 해 줌.
2. 베델로 올라가는 길에 어린 아이들이 '대머리'라고 놀리는 아이들을 저주함으로 42명이 곰에게 죽임을 당함.
. 묵상 말씀: "엘리사는 돌아서서 그들을 보고, 주님의 이름으로 저주하였다. 그러나 곧 두 마리의 곰이 숲에서 나와서, 마흔두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찢어 죽였다"(왕하2:24).
1. 참된 경건
예언자의 역할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오늘 본문을 보며 그런 생각이 먼저 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 말씀으로 인하여 하느님의 심판과 저주로부터 구원해내는 게 예언자의 역할입니다. 성읍 사람들이 사용하는 물에 문제가 있어서 임산부들이 유산을 하는 일까지 나서서 해결해 주는 게 예언자의 일이라면, 세상의 모든 문제는 예언자의 몫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하여 외면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엘리사는 기꺼이 그 일을 해결해줬습니다. 예언자의 직책을 감당할 수 있도록 권능을 주시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이뤄진 일이지만, 왠지 그런 일을 외면하지 않은 엘리사의 모습 속에서 거룩한 경건의 모습이 보입니다. 요즘 교회, 목회자의 자리를 돌아봅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그 주님을 구세주로 모시는 사람들 말입니다. 물이 안 좋아 임산부들이 유산을 하는 문제는 구조적인 사회문제입니다. 명백한 사회적 불의와 모순에 대하여 참여와 연대로 힘을 모아주는 것, 그게 이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참된 경건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2. 언급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
설교자로서 종종 피하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엘리사를 '대머리'라고 놀렸다가 곰한테 42명의 어린아이들이 죽임을 당한 일이 바로 그 말씀 중 하나입니다. 어른을 '대머리'라고 놀린 것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죽임을 당할 만큼 큰일을 저지른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점잖게 타일러 그런 일을 하지 않게 하는 게, 적어도 상식적인 수준의 판단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그런 상식을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나 있습니다. 지금 시대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세계 토픽감이 될 만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일단 성서의 증언과 가르침은 그 일의 사실관계나 적절성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사실관계를 분석하거나 우리의 기준으로 가치 판단을 한다면 그 말씀의 의미를 왜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 속에 담긴 의미를 성찰하는 게 말씀을 대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 담긴 뜻은 뭘까요? 오늘 어린 아이들이 한 일은 한 개인에 대한 모욕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신 직책과 직분, 사명에 대한 모욕이었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나아가 하느님의 일에 대한 모욕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의 죽음을 그런 의미에 대한 가르침과 동일한 선상에 놓고 있다는 것,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 읽은 말씀: 열왕기하2:19-25
. 내 용: 엘리사의 기적
1. 여리고 성읍사람들이 '물 때문에 임산부들이 유산을 한다'는 말을 전해들은 엘리사, 그 곳 물을 깨끗하게 해 줌.
2. 베델로 올라가는 길에 어린 아이들이 '대머리'라고 놀리는 아이들을 저주함으로 42명이 곰에게 죽임을 당함.
. 묵상 말씀: "엘리사는 돌아서서 그들을 보고, 주님의 이름으로 저주하였다. 그러나 곧 두 마리의 곰이 숲에서 나와서, 마흔두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찢어 죽였다"(왕하2:24).
1. 참된 경건
예언자의 역할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오늘 본문을 보며 그런 생각이 먼저 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 말씀으로 인하여 하느님의 심판과 저주로부터 구원해내는 게 예언자의 역할입니다. 성읍 사람들이 사용하는 물에 문제가 있어서 임산부들이 유산을 하는 일까지 나서서 해결해 주는 게 예언자의 일이라면, 세상의 모든 문제는 예언자의 몫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하여 외면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엘리사는 기꺼이 그 일을 해결해줬습니다. 예언자의 직책을 감당할 수 있도록 권능을 주시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이뤄진 일이지만, 왠지 그런 일을 외면하지 않은 엘리사의 모습 속에서 거룩한 경건의 모습이 보입니다. 요즘 교회, 목회자의 자리를 돌아봅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그 주님을 구세주로 모시는 사람들 말입니다. 물이 안 좋아 임산부들이 유산을 하는 문제는 구조적인 사회문제입니다. 명백한 사회적 불의와 모순에 대하여 참여와 연대로 힘을 모아주는 것, 그게 이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참된 경건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2. 언급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
설교자로서 종종 피하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엘리사를 '대머리'라고 놀렸다가 곰한테 42명의 어린아이들이 죽임을 당한 일이 바로 그 말씀 중 하나입니다. 어른을 '대머리'라고 놀린 것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죽임을 당할 만큼 큰일을 저지른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점잖게 타일러 그런 일을 하지 않게 하는 게, 적어도 상식적인 수준의 판단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그런 상식을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나 있습니다. 지금 시대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세계 토픽감이 될 만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일단 성서의 증언과 가르침은 그 일의 사실관계나 적절성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사실관계를 분석하거나 우리의 기준으로 가치 판단을 한다면 그 말씀의 의미를 왜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 속에 담긴 의미를 성찰하는 게 말씀을 대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 담긴 뜻은 뭘까요? 오늘 어린 아이들이 한 일은 한 개인에 대한 모욕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신 직책과 직분, 사명에 대한 모욕이었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나아가 하느님의 일에 대한 모욕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의 죽음을 그런 의미에 대한 가르침과 동일한 선상에 놓고 있다는 것,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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