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605 아히시야의 무지와 고집
2012.06.05 06:22
||0||0120605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열왕기하1:1-18
. 내 용: 엘리야와 아하시야 왕의 죽음
1. 다락방 난간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은 아하시야가 자신의 병이 나을 수 있을지를 묻기 위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보냈으나 도중에 엘리야로부터 아하시야를 잘못과 죽음에 대한 예언을 들음.
2. 그 예언을 들은 아하시야는 엘리야를 체포하기 위해 자신의 부하들을 세 번이나 보냈으나 두 번째까지는 모두 불에 타 죽고, 세 번째 부하들은 오십부장의 기지로 살게 됨.
3. 엘리야의 예언대로 아하시야는 그 병으로 죽고 그 아들 여호람이 뒤를 이어 왕이 됨.
. 묵상 말씀: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다니, 이스라엘에 하느님이 계시지 않느냐?"(왕하1:3).
1. 죽으려고 환장을 한 아하시야
난간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은 아하시야가 행한 일들을 보면 아예 죽으려고 작정을 한 모습입니다.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은 파리의 형상을 한 신입니다. 사람들은 그 바알세붑을 질병을 다스리는 신으로 섬겼습니다. 아하시야는 그 사실을 알고 보낸 듯싶습니다. 우상 속에서 살았던 상황이니 거기까지는 이해가 됩니다. 그러한 아하시야를 깨우치기 위해 하느님은 엘리야를 통해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하시야의 반응은 엘리야에 대한 체포시도였습니다. 죽을병에 걸린 아하시야의 시도가 과연 병을 낫고자 함인지 아니면 죽으려고 하는 짓인지 구분이 되질 않을 정도입니다. 엘리야가 아하시야가 중상을 입었는지 알지도 못하고 또 알고 싶지도 않았을 겁니다. 순전히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행했을 터였고, 그러한 사실은 엘리야를 체포하기 위해 왔던 두 오십부장과 부하들의 죽음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아하시야의 모습 속에서 죽으려고 환장을 한 모습이 보입니다.
2. 고집과 무지
그러한 아하시야의 모습을 보면서 그를 죽게 한 것은 고집과 무지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사절단을 바알세붑에게 보냈지만, 이는 결국 살려는 의지의 표현일 뿐입니다. 그 방법이 잘못된 것을 하느님께서는 엘리야를 통해 지적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엘리야에게 그런 태도를 보였을까요? 바로 고집과 무지 때문인 듯싶습니다. 그 무지와 고집은 죄의 속성에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는 게 죄입니다. 이스라엘에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 그 유산이 살아있는 곳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엘리야를 통해 이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하느님이 계시지 않느냐?"(3). 하느님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땅에서 바알세붑에게 가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이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순간, 그의 시야에서는 하느님이 떠난 것입니다. 보지도 만지지도 말라고 한 선악과를 탐내는 순간 아담과 하와의 시야에서 하느님이 사라지듯이 말입니다. 하느님이 그 시야에서 떠나는 순간, 아하시야에게는 고집만 남게 된 셈입니다.
. 읽은 말씀: 열왕기하1:1-18
. 내 용: 엘리야와 아하시야 왕의 죽음
1. 다락방 난간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은 아하시야가 자신의 병이 나을 수 있을지를 묻기 위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보냈으나 도중에 엘리야로부터 아하시야를 잘못과 죽음에 대한 예언을 들음.
2. 그 예언을 들은 아하시야는 엘리야를 체포하기 위해 자신의 부하들을 세 번이나 보냈으나 두 번째까지는 모두 불에 타 죽고, 세 번째 부하들은 오십부장의 기지로 살게 됨.
3. 엘리야의 예언대로 아하시야는 그 병으로 죽고 그 아들 여호람이 뒤를 이어 왕이 됨.
. 묵상 말씀: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다니, 이스라엘에 하느님이 계시지 않느냐?"(왕하1:3).
1. 죽으려고 환장을 한 아하시야
난간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은 아하시야가 행한 일들을 보면 아예 죽으려고 작정을 한 모습입니다.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은 파리의 형상을 한 신입니다. 사람들은 그 바알세붑을 질병을 다스리는 신으로 섬겼습니다. 아하시야는 그 사실을 알고 보낸 듯싶습니다. 우상 속에서 살았던 상황이니 거기까지는 이해가 됩니다. 그러한 아하시야를 깨우치기 위해 하느님은 엘리야를 통해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하시야의 반응은 엘리야에 대한 체포시도였습니다. 죽을병에 걸린 아하시야의 시도가 과연 병을 낫고자 함인지 아니면 죽으려고 하는 짓인지 구분이 되질 않을 정도입니다. 엘리야가 아하시야가 중상을 입었는지 알지도 못하고 또 알고 싶지도 않았을 겁니다. 순전히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행했을 터였고, 그러한 사실은 엘리야를 체포하기 위해 왔던 두 오십부장과 부하들의 죽음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아하시야의 모습 속에서 죽으려고 환장을 한 모습이 보입니다.
2. 고집과 무지
그러한 아하시야의 모습을 보면서 그를 죽게 한 것은 고집과 무지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사절단을 바알세붑에게 보냈지만, 이는 결국 살려는 의지의 표현일 뿐입니다. 그 방법이 잘못된 것을 하느님께서는 엘리야를 통해 지적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엘리야에게 그런 태도를 보였을까요? 바로 고집과 무지 때문인 듯싶습니다. 그 무지와 고집은 죄의 속성에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는 게 죄입니다. 이스라엘에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 그 유산이 살아있는 곳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엘리야를 통해 이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하느님이 계시지 않느냐?"(3). 하느님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땅에서 바알세붑에게 가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이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순간, 그의 시야에서는 하느님이 떠난 것입니다. 보지도 만지지도 말라고 한 선악과를 탐내는 순간 아담과 하와의 시야에서 하느님이 사라지듯이 말입니다. 하느님이 그 시야에서 떠나는 순간, 아하시야에게는 고집만 남게 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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