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121 중심을 보시는 하느님
2011.11.21 06:25
||0||0111121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사무엘상16:6-13
. 내 용: 중심을 보시는 하느님
1. 제사를 드리기 전 성결의식을 통해 이새의 아들을 직접 만나는 사무엘.
2. 이새의 아들 가운데 다윗을 지목하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줌.
3. 하느님의 영이 다윗에게 임하고 감동시킴.
. 묵상 말씀: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삼상16:7)
1. 제사 전, 성결 의식을 겸해 이새의 아들들을 마주한 사무엘
사무엘의 요청대로 집에 불러들인 아들은 모두 일곱 명이었습니다. 엘리압을 비롯해서 아비나답, 삼마 등 일곱 명을 모두 보았으나 그 중에는 기름 부을 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게 다냐, 는 사무엘의 질문에 드레서 양 치는 다윗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한마디로 이새는 다윗을 아들 축에 끼워주지도 않은 것입니다. 막내로서 기라성 같은 형들 사이에서 늘 소외되어있던 다윗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다윗을 본 사무엘은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2. 중심을 보시는 하느님
이세의 첫째 아들인 엘리압을 본 사무엘은 한 눈에 그가 왕으로서 위엄을 갖춘 것을 보게 됩니다만, 하느님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주신 말씀이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삼상16:7)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두 가지 듯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사람들이 보는 시각과 하느님의 시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좋아 보이는 것이 하느님에게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시각을 하느님의 뜻으로 절대화 시키는 오류를 범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또 하나, 진심을 보시는 하느님을 보게 됩니다. 중심이라는 게 뭐 다른 것이겠습니까? 마음속에서 꿈틀대는 정신과 생각 덩어리들을 보신다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진실, 진심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은 것입니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이란, 하느님과 사람 앞에서 진실하게 산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 읽은 말씀: 사무엘상16:6-13
. 내 용: 중심을 보시는 하느님
1. 제사를 드리기 전 성결의식을 통해 이새의 아들을 직접 만나는 사무엘.
2. 이새의 아들 가운데 다윗을 지목하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줌.
3. 하느님의 영이 다윗에게 임하고 감동시킴.
. 묵상 말씀: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삼상16:7)
1. 제사 전, 성결 의식을 겸해 이새의 아들들을 마주한 사무엘
사무엘의 요청대로 집에 불러들인 아들은 모두 일곱 명이었습니다. 엘리압을 비롯해서 아비나답, 삼마 등 일곱 명을 모두 보았으나 그 중에는 기름 부을 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게 다냐, 는 사무엘의 질문에 드레서 양 치는 다윗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한마디로 이새는 다윗을 아들 축에 끼워주지도 않은 것입니다. 막내로서 기라성 같은 형들 사이에서 늘 소외되어있던 다윗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다윗을 본 사무엘은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2. 중심을 보시는 하느님
이세의 첫째 아들인 엘리압을 본 사무엘은 한 눈에 그가 왕으로서 위엄을 갖춘 것을 보게 됩니다만, 하느님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주신 말씀이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삼상16:7)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두 가지 듯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사람들이 보는 시각과 하느님의 시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좋아 보이는 것이 하느님에게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시각을 하느님의 뜻으로 절대화 시키는 오류를 범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또 하나, 진심을 보시는 하느님을 보게 됩니다. 중심이라는 게 뭐 다른 것이겠습니까? 마음속에서 꿈틀대는 정신과 생각 덩어리들을 보신다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진실, 진심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은 것입니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이란, 하느님과 사람 앞에서 진실하게 산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98 |
220917 변화산 사건(눅9:28-36)
![]() | 오목사 | 2022.09.18 | 9 |
97 |
220321 부자 청년 이야기(막10:17~31)
![]() | 오목사 | 2022.03.23 | 9 |
96 |
210212 무엇이 중요합니까?
![]() | 오목사 | 2021.02.12 | 9 |
95 |
201013 믿음이란?
![]() | 이주현 | 2020.10.20 | 9 |
94 | 200929 영원한 유업 영원한 구원 | 이주현 | 2020.10.03 | 9 |
93 | 200713 공평과 상생의 원리 | 이주현 | 2020.07.13 | 9 |
92 | 170117 거룩한 땅을 구별하신 하느님 | 이주현목사 | 2017.01.17 | 9 |
91 | 161111 '거룩한 질투심' | lsugk | 2016.11.11 | 9 |
90 | 161005 참된 믿음 | lsugk | 2016.10.05 | 9 |
89 |
240610 다윗의 감사 기도(삼하7:18-29)
![]() | 이주현 | 2024.06.10 | 8 |
88 | 240311 사울의 꼼수와 다윗의 진실(삼상18:17-30) | 이주현 | 2024.03.11 | 8 |
87 |
240227 반복되는 블레셋과의 전쟁의 의미(삼상17:1-11)
![]() | 이주현 | 2024.02.27 | 8 |
86 |
240112 사울 왕의 두 번째 패착(삼상15:1-12)
![]() | 이주현 | 2024.02.12 | 8 |
85 |
240205 하느님의 뜻하지 않은 방법(삼상14:16-23)
![]() | 이주현 | 2024.02.05 | 8 |
84 |
240108 엄중한 하느님의 권위(삼상6:19-7:17)
![]() | 이주현 | 2024.01.08 | 8 |
83 |
231128 행복한 세 사람(룻3:1-18)
![]() | 이주현 | 2023.11.28 | 8 |
82 |
231127 룻과 보아스의 만남(룻2:1-23)
![]() | 이주현 | 2023.11.27 | 8 |
81 |
231113 최악의 선택을 한 베냐민 지파(삿20:1-17)
![]() | 이주현 | 2023.11.13 | 8 |
80 | 231107 영혼 없는 제사장과 라이스의 멸망(삿18:11-31) | 이주현 | 2023.11.07 | 8 |
79 |
231002 에브라임의 칭찬과 숙곳의 보복(삿8:1-17)
![]() | 이주현 | 2023.10.02 |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