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322 욥의 답변-나는 결백하다
2013.03.22 06:47
||0||0130322 새벽 묵상
. 읽은 말씀: 욥기6:1-13
. 내 용: 욥의 답변- 나는 결백하다.
1. 친구 엘리바스의 충고와 조언 뒤에 욥의 답변이 나옴.
2. 자신의 결백과 자신의 불평은 다 이유가 있음을 주장함.
3. 나아가 자신의 소원과 기쁨은 '죽는 것'이라는 놀라운 고백을 하고 있음.
. 묵상 말씀: “나는 거룩하신 분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다”(욥6:10).
1. 영적 교만
인과응보론적인 차원에서 충고와 조언을 했던 친구 엘리바스에게 발끈하는 욥의 모습이 얼른 눈에 띕니다. 먼저 욥은 자신이 당하는 고통의 무게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다의 모래 보다 더 무겁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탄식과 불만을 합리화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욥이 저렇게 살아있는 것만도 기적일 터입니다. 인간이 감내하기 힘든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 저렇게 말 할 기운이 남아있는 것 자체가 말입니다. 아마도 보통 사람 같았으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널브러져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상대가 욥이 아닙니까? 욥이 어떤 사람이었나요? 자식 수대로 하느님께 번제를 드리고 또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도 모르는 죄를 지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한 번의 제사를 더 드렸던 욥입니다.(1:5) 자녀들에 대한 지극한 애정과 더불어 하느님에 대한 철저함이 철철 넘쳐 보입니다. 그랬던 욥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불평을 합리화 하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좀 부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습니까? 정상 괘도를 이탈한 증거입니다.
2. 영적 순전함
그렇습니다. 욥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불평을 합리화하기보다 고난에 대한 성찰이 필요했습니다. 자신이 당하는 고난의 무게를 과시하려는 듯한 언사보다는 자식들이 알지 못하는 죄를 위해 번제를 드렸던 심정으로, 자신을 성찰하는 답변이 언급되어야 했습니다. 여기서부터 욥은 이미 정서적으로 정상적인 괘도를 이탈한 모습이 보입니다. 이제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느님의 손길'을 왜곡하는 언사를 쏟아냅니다. ‘하느님이 나를 부수시고 손을 들어 깨뜨려 주시면, 그것이 오히려 내게 위로가 되고..’(10). 이는 겉으로 차라리 죽여달라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천천히 살펴보면 ‘하느님의 도우심 같은 거, 기대도 안 하고 필요도 없다’는 뜻 아닌가요? 죽는 거야 때가 되면 저절로 죽는 건데 말입니다. 차라리 죽여 달라는 것보다 더 완곡한 표현으로 결코 해서는 안될 말을 한 셈입니다. 이랬던 욥이 앞으로 얼마나 더 망가질 지, 아니면 회복 될 지 참으로 궁금해집니다.
. 읽은 말씀: 욥기6:1-13
. 내 용: 욥의 답변- 나는 결백하다.
1. 친구 엘리바스의 충고와 조언 뒤에 욥의 답변이 나옴.
2. 자신의 결백과 자신의 불평은 다 이유가 있음을 주장함.
3. 나아가 자신의 소원과 기쁨은 '죽는 것'이라는 놀라운 고백을 하고 있음.
. 묵상 말씀: “나는 거룩하신 분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다”(욥6:10).
1. 영적 교만
인과응보론적인 차원에서 충고와 조언을 했던 친구 엘리바스에게 발끈하는 욥의 모습이 얼른 눈에 띕니다. 먼저 욥은 자신이 당하는 고통의 무게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다의 모래 보다 더 무겁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탄식과 불만을 합리화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욥이 저렇게 살아있는 것만도 기적일 터입니다. 인간이 감내하기 힘든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 저렇게 말 할 기운이 남아있는 것 자체가 말입니다. 아마도 보통 사람 같았으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널브러져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상대가 욥이 아닙니까? 욥이 어떤 사람이었나요? 자식 수대로 하느님께 번제를 드리고 또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도 모르는 죄를 지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한 번의 제사를 더 드렸던 욥입니다.(1:5) 자녀들에 대한 지극한 애정과 더불어 하느님에 대한 철저함이 철철 넘쳐 보입니다. 그랬던 욥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불평을 합리화 하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좀 부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습니까? 정상 괘도를 이탈한 증거입니다.
2. 영적 순전함
그렇습니다. 욥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불평을 합리화하기보다 고난에 대한 성찰이 필요했습니다. 자신이 당하는 고난의 무게를 과시하려는 듯한 언사보다는 자식들이 알지 못하는 죄를 위해 번제를 드렸던 심정으로, 자신을 성찰하는 답변이 언급되어야 했습니다. 여기서부터 욥은 이미 정서적으로 정상적인 괘도를 이탈한 모습이 보입니다. 이제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느님의 손길'을 왜곡하는 언사를 쏟아냅니다. ‘하느님이 나를 부수시고 손을 들어 깨뜨려 주시면, 그것이 오히려 내게 위로가 되고..’(10). 이는 겉으로 차라리 죽여달라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천천히 살펴보면 ‘하느님의 도우심 같은 거, 기대도 안 하고 필요도 없다’는 뜻 아닌가요? 죽는 거야 때가 되면 저절로 죽는 건데 말입니다. 차라리 죽여 달라는 것보다 더 완곡한 표현으로 결코 해서는 안될 말을 한 셈입니다. 이랬던 욥이 앞으로 얼마나 더 망가질 지, 아니면 회복 될 지 참으로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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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이어갈지 생각해 봅니다..
...아찔하네요...